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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가 23일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조승수 전 진보신당 대표와 함께 손잡고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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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죄수 A, B가 감방에 따로 갇혀 있다. 둘 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들은 다른 혐의로 각각 2년의 징역을 살게 된다. 만약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범죄 사실을 증언하면 증언한 죄수는 1년을 살고 나머지는 5년을 산다. 그런데 만약 두 명의 범죄 사실이 모두 밝혀지게 되면 둘은 각각 4년의 징역을 산다.
두 죄수의 최선의 선택은 서로 발설하지 않기로 협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료의 배신에 대한 유혹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칫 둘 다 서로를 배신하게 되면 오히려 더 큰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액설로드는 무한히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연구하여 협력과 배신이 어떻게 생겨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지를 조사하였다.
'응징의 가치'가 말살된 대한민국 역사
그는 여러 가지 알고리즘을 분석한 결과, 가장 단순한 팃포탯(tit for tat) 전략(첫 게임에는 협력,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직전에 한 대로 따라 하기)이 가장 성공적인 전략임을 보였다. 팃포탯이란 상대방이 협력하면 협력하고, 배신하면 즉각 응징하는 전략을 말한다.
팃포탯 전략은 국제사회에서도 가장 흔한 외교적 스탠스다. 가령 북한 핵문제의 경우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나쁜 행동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팃포탯 전략이다.
액설로드는 이 연구에서 배신에 대한 응징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했다. 도발과 배신을 즉각적으로 응징하는 전략은 그렇지 않은 전략보다 좋은 결과를 도출했다. 이는 배신을 응징하지 않거나 그 응징이 즉각적이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되어 상대방은 계속 배신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결론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신에 대한 즉각적인 응징이 이뤄지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를 알아보는 데에는 한국사회가 제격이다.
안타깝게도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은 독립지사들을 중심으로 해서 건설되지 못했고, 반대로 친일부역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오히려 독립지사들을 탄압했다. 민족의 반역자들은 미국과 독재자에 협력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권세를 누려왔다. 반역과 배신에 대한 즉각적인 응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누구나 배신의 큰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정의가 거꾸로 뒤집어진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이 응징되지 못한 배신의 성공 스토리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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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18일 오전 범외식인 10인 결의대회가 열리는 잠실종합운동장을 방문해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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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재보선을 앞둔 2011년의 한국은 그렇게 뒤틀린 자신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네거티브이든 후보검증이든 그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사회의 속살은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짐이 얼마나 무겁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지, 새삼 그 무게감을 느끼게 해 준다.
먼저 '어느' 유력후보가 '또 다른' 유력후보에게 제기한 의혹은 병역기피 목적 호적 쪼개기, 학력위조, 수상한 기부금, 월세 등이었다. 이에 맞서 '또 다른' 후보가 '어느' 후보에게 제기한 의혹은 건물투기, 유흥주점 월세, 2캐럿 다이아, 부친 학교 감사 제외 청탁, 부친 학교 재단 이사등재 등이었다.
그런데, '어느' 후보 쪽의 검증 공세는 곧바로 역풍을 맞았다. 왜냐하면 '어느' 후보가 속한 정당과 그 정당이 옹호하는 현 정부 각료들 중에는 병역이나 재산, 학력위조, 위장전입 같은 의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도가 또 다른 도둑놈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처벌받지 않은 강도가 다른 도둑의 처벌을 주장할 때 우리는 뭔가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미심쩍은 방법으로 군대 안 간 사람들이 병역비리를 파헤치겠다고 나서고, 차떼기 하거나 기부금 가로챈 정당에서 남의 기부금 문제 삼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너무나 선명한 데자뷰를 떠올렸을 것이다.
FTA 문구 하나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분들이 '어륀쥐'를 가르치려 들더니, 위장전입 같은 '별'을 하나씩 달고 있는 분들은 하나같이 목소리를 높여 준법과 질서를 강조하고 나섰다. 마침 현직 대통령 직계존비속의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내곡동 사건이 터지면서 사람들은 '어느' 후보의 몇 년 전 봉하 '아방궁' 관련 발언을 떠올렸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어떻게 현실을 왜곡했나
청산되지 않은 역사, 잘못에 대한 즉각적인 응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는 흉악범이 경찰을 처벌하는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이 이야기는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 앞잡이들이 권력을 잡고서 독립투사들을 때려잡은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와 너무나 닮았다.
'어느' 후보의 의혹 중에는 학력 허위기재 의혹처럼 실무자의 단순실수도 있고, 또 '또 다른' 후보 측에서도 인정했듯이 배우자 병역비리 의혹 처럼 비극적인 한국현대사의 파편에 의한 것도 있다. 고가의 피부클리닉에 다닌 것은 비록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위법하거나 심대한 부정비리는 아니다. 내 생각에 정말로 중요한 의혹은 '어느' 후보가 부친의 비리 사학재단 이사로 계속 재직하고 있었고, 이를 숨겨왔다는 점이다.
'어느' 후보는 명문대 법대를 나와 판사를 거쳐 국회의원에 이른, 한국사회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거쳐 온 분이다. 학생들을 사실상 강제 노역시킨 비리사학의 2세가 이렇게 막강한 권세를 누린다면 비리사학의 잘못이 '응징'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어느' 후보는 자신의 국회의원직을 이용하여 사학법 개정 반대에 적극적이었고, 감사 제외를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것은 선친대의 부정비리가 응징되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대를 이어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겉모습만 보기에는 마치 어느 영화에서 조직폭력배가 자신의 방패막이를 만들기 위해 조직원을 경찰학교에서부터 침투시킨 것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이것이 왜 그토록 심각한 문제인지를 영화 <도가니>를 통해 알 수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기는커녕 다시 교단으로 돌아와 버젓이 학생들에게 못된 짓을 되풀이하는 끔찍한 상황이 구조적으로 고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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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박원석 협동사무처장을 비롯한 활동가들로 구성된 '이명박 대통령 사저 부지 방문단'이 17일 낮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사저 부지를 방문해서 '이곳은 범죄현장입니다'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부동산 실명제 위반'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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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있는 국민들이라면 북한의 3대 세습이 대단히 잘못된 선택이라는 데에 이견을 달기 어려울 것이다. 세습권력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지 않고, 그래서 통치자의 사리사욕을 위해 막강한 권력이 동원되며,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것이 개선될 구조적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헌법 1조1항에서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대한민국은 어떨까. 응징되지 못한 부정과 비리와 반역은 법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어느' 후보의 경우처럼 대를 이어 전승되고 있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은 집안의 이익을 위해 사유화되고 개선의 여지는 더더욱 차단된다.
게다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뭉쳐서 하나의 거대한 세력(검찰, 언론, 재벌을 망라하는)을 만들었기 때문에 응징되지 못한 부조리의 골짜기는 깊어만 간다. '어느'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보수언론에게 종합편성채널을 안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 언론사들은 그 보답인 양 이번 선거에서 '어느' 후보를 압도적으로 편들고 사실상 지원하고 있다. 비리와 부정과 반역은 구조적으로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어느' 후보 옆에는 '독재자의 딸'이 선거를 돕고 있고 (아마도 그녀는 '어느' 후보가 "딸을 가진 어머니의 마음"을 계속 강조하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 뒤에는 국민의 손에 쫓겨난 초대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려는 무리들이 있다. '뉴라이트'라고 하는 이들의 세계관은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투사를 때려잡던 친일 앞잡이들과 다르지 않다. 이 모두가 척결되지 못한 역사의 좀비들이다. 응징하지 못한 반역과 부정은 대를 잇고, 그렇게 권력을 잡은 기득권은 다시 대를 이어 사유화된 권력을 향유한다.
직접적인 세습은 아니지만 MB의 경우는 응징되지 못한 부정비리가 권력의 사유화와 맞물려 역사에 재등장할 때 얼마나 패악스러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그 극단을 보여준다. 누구나 동의하듯이 MB는 '도덕성보다 능력'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능력은 70년대 성장제일주의에 최적화된 능력이다. 절차나 원칙, 윤리는 조금 훼손되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능력에서 그를 당할 자는 아마 대한민국에 별로 없을 것이다.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서는 다소 부정과 비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고 지금도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 그때 청산되지 못한 악습은 4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살해했고, 그 자리에는 한반도를 뒤덮는 '공구리'(콘크리트)가 꿰차고 들어 앉았다.
민주주의 살해한 '공구리', 당신은 선택은?
투표로 위임된 국민의 권력은, 도덕성마저 필요 없게 만든다는 그의 그 놀라운 능력. 그에 의해 사유화된 권력으로 바뀐 대통령직이란, 그저 자신과 일족의 재산과 권세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MB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보여준 통치의 도덕적 기준은 너무나 낮고, 내곡동 사건처럼 법을 위반한 사례가 지극히 엄중하다. 그 탓에 차기 대통령은 어지간한 부정비리나 위법행위를 저지르더라도 MB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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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자료사진)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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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가 차기정부를 평가할 때 MB정부가 판단의 기준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현 정부의 실정과 위법사례에 대해서는 철저한 '응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MB식 부정부패는 그의 자손과 추종자들에 의해 언제든지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다.
이렇듯 70년대 개발독재의 화신인 MB와 비교하면 최근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안철수 돌풍'의 비밀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부정과 비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70년대식의 성공스토리에 세뇌되어 있었다. 민주주의보다는 경제발전을 선택했고, 도덕성보다는 능력을 우선했다. 그러나 안철수의 등장은 많은 사람에게 성공에 대한 '또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악해지지 않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비리와 부정에 물들지 않고서도 우아하게 성공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함을 그가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70년대식 스토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의 '또 다른' 길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안철수가 집권세력을 "응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대단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잘못된 악습과 반역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또 다른' 길에 이르는 문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막판에 이른 선거는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박빙의 접전이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지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투표율은 25.7%였다. 일부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 가운데 약 85%가 오세훈 안을 지지했다고 한다. 따라서 대략적으로 생각해 보면 유권자의 약 26% 중 85%, 즉 유권자의 약 22%(0.26x0.85=0.22)는 '어느' 후보를 찍을 것이다. 이들은 굉장히 적극적인 투표자일 것이므로 '또 다른' 후보가 이기려면 최소한 투표율이 22%의 배는 나와야 함을 알 수 있다.
정의로운 응징, '지금 여기'에서 필요하다
이는 이번 선거의 원인제공을 했던 지난 주민투표의 결과만 가지고서 아주 대략적으로 유추한 결과다. 실제 선거결과와는 상당히 다를 수 있지만 투표율 약 50%를 기준으로 두 후보의 유불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대략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번 선거가 재보선임을 감안한다면 표로써 누군가를 응징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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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의 이름을 연호하며 '기호10번'을 뜻하는 열손가락을 펴보이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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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참된 언론도 그 중 하나이다. 온갖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 매체는 예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지만,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인터넷 포털은 '점령'당했고 방송사에는 낙하산이 내리꽂혔다.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던 신문사는 여전히 건재하다. 입바른 소리하는 방송인들은 줄줄이 철퇴를 맞았다.
그러나 진실을 갈망하고 부정에 저항하는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은 두꺼운 지각을 뚫고 솟아나는 화산처럼 막을 수가 없다. 최근 아이튠즈 팟 캐스트의 <나는 꼼수다>가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디지털 TV시대를 코앞에 둔 대한민국에서 마치 독립군이 방송하는 라디오를 순사 몰래 숨어서 듣듯이 매주 <나는 꼼수다>를 이어폰 끼고 듣는 모습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미 <나는 꼼수다>는 저항의 사령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세상의 진실을 알 수 있는 가장 믿을만한 매체는 손으로 쓴 대자보와 조악하게 만든 길거리 유인물이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도 독재를 몰아냈고 민주주의를 되찾았다. 지금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한 번의 재보선으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역사의 첫 출발은 될 수 있다. 60년도 넘은 반역의 역사를 응징하고 청산하기란 쉽지 않은 대장정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지금 바로 첫발을 떼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다가오는 10.26 재보선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신성한 봉기의 첫 봉화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당신의, 그리고 우리의 정의롭고 압도적인 '응징'만이 뒤틀린 한국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