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술 18년, 안동소주 30년 마시고 싶어라
등록 : 2009.07.01 21:46수정 : 2009.07.05 13:20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363514.html
소주의 ‘소’자는 불태운다는 뜻이다. 증류주를 뜻한다.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의 가장 큰 차이는 향이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은 보리로 담근 소주 기록을 최근 찾아냈다. |
[매거진 esc]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문배술·안동소주 등 증류식 소주 대 서민의 술 희석식 소주 맛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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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나무 기자(이하 고) : 주정에 물을 타서 만드는 희석식 소주는 언제 처음 생긴 걸까요? 진로는 아예 답을 안 했고, 롯데주류에서는 정부가 양곡관리법을 만들어 양곡으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한 1964년쯤이라고 설명하더군요.
박록담 소장(이하 박) : 아마 1945년 해방 뒤 등장했을 겁니다. 일제 때도 알코올을 생산하던 주정회사가 있었습니다. 감자나 타피오카(열대식물 뿌리)가 당시에도 재료로 쓰였습니다. 사탕수수 찌꺼기도 쓰였죠. 해방 뒤에는 미국에서 준 감자껍질을 썼다고도 하고요. ‘주정’(酒精)은 사전적으로 ‘에탄올’이란 뜻이지만 주세법상 95% 이상의 알코올로 정의됩니다. 주정 자체에는 단맛도 있고 쓴맛도 있는데, 물을 섞으면 쓴맛이 너무 강해 역해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감미료를 넣는 거죠. 물을 많이 섞을수록 쓴맛이 더 많아집니다. 요즘 19도짜리 희석식 소주도 많이 나왔죠? 아마 감미료를 더 많이 썼을 겁니다.
고 : 문배술 순부터 품평해주시죠. 순수 증류식 소주인데 도수가 23%로 낮군요.
박 : 증류를 오래 하면, 처음에는 도수가 높지만 차차 알코올 함량이 낮아지고 나중에는 물이 나오죠. 에스테르향(에스테르는 물과 반응해 알코올과 유기산 등이 되는 화합물로 새큼한 과일향이 난다)이 납니다. 좀더 바디(액체의 묵직한 정도)가 있고 쓴맛이 더 있습니다. 참이슬 프레시는 단맛이 나고 부드럽군요. 처음처럼은 참이슬 프레시보다 단맛이 덜합니다. 증류식 소주는 바디가 더 묵직합니다. 쓴맛은 희석식 소주에 비해 더 강합니다. 사람들은 희석식 소주의 단맛에 길들어 있죠.
고 : 증류식 소주는 좋은 향이 나는데 희석식 소주는 아무 향이 없네요.
박 : 그렇죠. 위스키 같은 세계의 명주는 자체 향이 강합니다. 또 증류식 소주는 숙취나 구취가 없습니다. 안동소주 역시 에스테르향이 깊게 납니다. 제가 감미료를 왜 넣는지 보여드리죠. (안동소주에 설탕을 약간 넣은 뒤) 이제 마셔보세요.
고 : 신기하네요, 증류식 소주의 쓴맛과 톡 쏘는 매운 풍미가 사라지네요. 대신 목 넘김 뒤 끝맛이 느끼하고 역합니다.
희석식 소주는 감미료 맛
박 : 종합적으로 문배술 순은 신선하면서도 향과 맛이 깊습니다. 안동소주도 에스테르향과 깊은 맛을 냅니다. 문배술 맛이 안동소주보다 더 복합적입니다. 증류식 소주는 둘 다 매운 풍미가 있고요. 반면 희석식 소주는 향이 없습니다.
고 : 희석식 소주보다 증류식이 좋은 건 알겠는데, 아쉬움도 있습니다. “우리 증류식 소주는 맛이 너무 거칠다. 위스키처럼 오래 숙성하면 안 되냐”고 아쉬워하는 위스키 애호가가 많더군요.
박 : 우리 옹기는 서양의 참나무통에 뒤지지 않을 만큼 좋은 숙성 도구죠. 참나무통과 달리 본래의 색을 바꾸지 않고 맛과 향을 좋게 할 수 있습니다. 위스키처럼 증류식 소주를 10년, 20년 옹기에 숙성하면 맛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만, 경영상의 이유로 그런 장기 숙성 상품을 시도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고 : 만약 희석식 소주 네 종류를 블라인드 테이스팅 한다면, 맞히실 수 있겠어요?
박 : 글쎄요, 희석식 소주 맛의 차이는 첨가물 조합 비율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희석식 소주가 맛과 풍미에서 더 다양할 수는 없는 걸까? 모든 희석식 소주 회사가 비슷한 주정을 쓰는 탓에 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한주정판매주식회사와 롯데주류의 설명을 종합하면, 국내 모든 (희석식) 소주 회사가 사용하는 주정은 국세청에서 수요를 예측한 것을 근거로 10개 주정회사에서 만든 주정을 대한주정판매주식회사에서 공통으로 배정받아 사용한다. 쌀, 보리, 타피오카 등 전분질 원료를 발효시켜 증류한 발효주정과 브라질 등의 외국에서 생산된 조 주정(사탕수수 등이 원료)을 수입하여 국내에서 다시 증류한 정제주정 등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국내에는 진로발효, 창해에탄올, 일산실업 등 10개의 주정회사가 있다. 생산한 주정은 법률에 따라 주정회사 마음대로 팔 수 없고 전량 대한주정판매주식회사에 판매해야 한다. 개인이 주정을 사려면 정해진 서식을 작성해 세무서에 내야 한다. 대한주정판매는 구입한 주정을 국내 소주회사에 독점 공급한다. 롯데주류는 주정 재료와 산지를 묻는 질문에 “소주 회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정부의 통제를 받아 배정받는다”고 밝혔다.
대한주정판매는 어떤 회사이기에 이런 특혜를 받는 것일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대한주정의 대주주는 17.48%의 지분을 보유한 진로발효다. 나머지 주정회사들이 차례로 상위 주주를 차지한다. 결국, 생산자들이 연합해 만든 판매·유통회사인 셈이다. 주정 생산 업체는 국내 잉여 농산물을 주정 재료로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고 생산량도 통제받는 등 불이익을 받는 대신, 생산한 모든 제품(주정)을 대한주정판매주식회사가 사주는 특혜를 받는다. 주정가격도 대한주정이 주로 결정한다. 갑자기 성장하기는 어렵지만 매출과 영업이익이 안정적인 시장이다. 기업에 비유하자면 공기업 같은 ‘신의 직장’이다. 이런 구조로 이익을 보는 또다른 주체는 국가다. 안정적으로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현재의 소주시장은 국가의 세수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
희석식 소주에 위해성 논란이 있는 첨가물이 표기되지 않는 것도 계속 지적된다. 국세청은 주세법 시행령에 허용된 첨가물이 정해져 있는데, 각 소주회사가 그 첨가물 가운데 어떤 것을 쓰는지는 영업비밀이며 국세청에서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또 시행령에는 사용 가능한 첨가물 목록만 있을 뿐 사용량에는 제한 규정이 없다. 주세법 시행규칙을 보면 “(주류의) 표시하여야 할 첨가물료의 종류는 식품위생법에 의하여 명칭과 용도를 표시하여야 하는 첨가물로 한다”고 돼 있다. 스테비오사이드 등 소주에 주로 쓰이는 첨가물은 ‘식품위생법상 표시할 의무가 있는 첨가물’이 아니므로 표기 의무가 없다. 소주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에 대해 묻자, 진로는 답변을 거부했고, 롯데주류는 스테비오사이드 등 재료의 이름과 용도를 밝혔다. 롯데주류는 아스파탐은 위해성 논란이 있어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진로는 주정 재료, 양조 과정 등에 대한 질문에는 모두 답변을 거부했다. “희석식 소주 회사에서 소주 제품을 다양화할 의무가 있지 않으냐”고 묻자, 롯데주류는 증류식 소주 제품을 개발중이라고 밝혔다. 진로는 증류식 소주 제품인 일품진로를 판매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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