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8대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오후 8시53분 현재 KBS는 개표 결과를 근거로 박 후보가 전체의 52.7%인 1천580만∼1천640만표를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KBS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46.9%인 1천406만∼1천466만표를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KBS와 연합뉴스 등은 이날 저녁 8시50분께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된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번 대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의 대결 구도로 펼쳐졌다. 두 사람 모두 전임 대통령의 후광에 기댄다는 약점을 안고 출발했지만 선거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인민혁명당 재심 사건과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받은 6억원 등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박정희 유신 정권에 대한 재평가 바람이 불었다.

시종일관 박근혜 후보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지지율을 보인 가운데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 그리고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후보가 참여한 TV토론이 변수로 작용했다. 요지부동이던 지지율이 11월 안철수 전 후보와 단일화 이후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선거 막판까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박빙의 상황으로 흘러갔다. 네거티브 공세가 속출했고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격렬한 토론이 오갔다.

13일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이후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유의미한 수준에서 바짝 따라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나 박근혜 후보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에서는 사나흘만 더 있었더라도 문재인 후보가 역전했을 거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선거 막판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가 오차 범위 내에서 혼전을 거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후보의 압도적인 우세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지난 7월 안철수 전 후보가 자서전을 출마하고 대선 출마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부터다. 안 전 후보는 8월에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본격적인 선거 운동을 시작했으나 단일화 협상 끝에 선거를 한 달도 채 못 남겨둔 지난달 23일 후보직을 사퇴했다. 안철수 지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문재인 후보 쪽으로 옮겨온 것으로 분석됐으나 상당수는 부동층으로 남은 것으로 분석된다.

'독재자의 딸' 번역 논란을 일으켰던 '타임즈' 표지 ⓒ 연합뉴스

이번 대선은 과거 어느 대선보다 정책대결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TV토론이 시작되자 두 사람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이정희 전 후보가 TV토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창씨개명 ‘다카키 마사오’를 거론하면서 여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나만 기억하시라, 나는 당신을 떨어뜨리려고 이 자리에 나왔다”는 이정희 전 후보의 발언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세 차례 TV토론은 박근혜 지지층을 더욱 결속시킨 것으로 보인다. 전국 최종 투표율이 75.8%로 집계된 가운데 대구가 79.7%, 경북이 78.2%의 높은 투표율을 보인 것도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과 경기 지역의 낮은 투표율과 이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가 격차를 크게 벌이지 못한 것도 패착이다. 서울 지역은 9시10분 현재 박근혜 48.0%, 문재인 51.6%, 경기는 박근혜 51.5%, 문재인 48.2%를 기록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정치 승부사로서의 기질을 드러냈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영입해 경제민주화 논쟁을 선점하고 쇼맨십일지언정 진보적 컬러인 붉은 색을 당 컬러로 받아들이고 당명을 바꾸고 보수 인사들을 총선 공천에서 배제하는 등의 개혁 정책도 이명박 대통령과 단절에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상징조작이 가능했던 데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정권에 예속된 공영 방송의 혜택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정책 이해도 부족하고 말투도 어눌하고 확실한 보수 이데올로기를 보여주지도 못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박정희 향수에 기대어 보수 회귀 심리를 자극했고 문재인 후보에게 참여정부 실패의 책임을 묻는 프레임이 주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벌개혁과 양극화 등의 이슈를 수용하는 등 민주통합당의 진보 어젠더를 발 빠르게 받아들여 보수 어젠더로 소화한 것도 보수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하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의 프레임을 넘어설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패착으로 분석된다.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가 지연되면서 문재인 후보가 전면에 나설 타이밍이 늦었고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박근혜 후보도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데도 실패했다. 무엇보다도 지지자들을 적극적으로 투표장에 끌어내기까지 절박한 시대정신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반성도 제기된다.

결국 개표 과정에서 이변이 없는 한 우리나라는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났던 박근혜 후보의 얄팍한 역사인식, 이명박 정부 정책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보수 기득권 이데올로기는 한국 사회가 앞으로 5년 동안 감내해야 할 무거운 숙명이다. 통합진보당의 몰락과 함께 진보진영의 무능과 대안 부재, 다수결 민주주의의 한계 역시 한국 정치의 숙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