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믹스. ‘이환천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내목 따고 속 꺼내서/끓는 물에 넣으라고/김 부장이 시키드나” (커피믹스)
“돈은 이미 정해졌고/너는 그냥 얼마 줄지/맞추기만 하면 되는/고난이도 심리게임” (희망연봉)
이런 독특한 시들이 실린 페이스북 페이지 ‘이환천의 문학살롱’(
▶ 바로 가기 )이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페이지의 운영자인 이환천(30)씨가 손글씨로 꾹꾹 눌러쓴 시는 때때로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고, 가까운 이들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폭로한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친구들을 재미있게 해주려고 싸이월드 일기장을 빌려 글을 썼다. 같이 읽고, 웃자고 쓴 시가 어느새 300편쯤 쌓였다. 고향인 부산에서 2년쯤 직장 생활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지난해 5월이다.
그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일기 쓰고 엔터만 잘 쳐도 시가 된다’는 모토를 내걸고 ‘이환천의 문학 살롱’을 열었다. 친구들에게만 보여줬던 시는 이제 매주 2~3편씩 6만여명의 독자를 만나고 있다. 문학살롱 페이지에 찾아오는 이들은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이씨는 1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많아지다 보니 꾸준히 운영을 하게 됐다”며 “문학살롱을 시작하면서 카피라이터, 웹툰 연재 등을 하게 됐고 책도 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를 구상할 때, 특히 직장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찾는다고 했다. 이씨가 쓴 시 가운데, 화제가 되고 있는 시 제목을 나열해보면 ‘희망연봉’, ‘맥주’, ‘월요일’, ‘알람’, ‘’불금, ‘다이어트’ 등이다.
그는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글을 보면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글을 쓰는데, 저는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마음 속 이면을 시에 쓴다”며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지만 공감을 나누고,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글을 주로 시에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어머니가 동창들과 대화를 하는 모바일 채팅창에 어느 날 제가 쓴 시가 공유된 것을 보고 놀랐다”며 “연령대가 높으신 어른들도 관심 있게 봐주시니까 더 신기했다”고 했다.
그는 “종종 악플을 적는 사람도 있고, ‘네가 뭔데 문학을 운운하고 시인이라고 자칭하고 다니냐’라고 하는 이도 있다”며 “하지만 일상생활 중에 힘든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찌들었을 때 잠깐 제 시를 읽고 웃을 수 있는 경험을 줄 수 있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서 앞으로도 계속 해보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아래 사진은 이환천씨 동의를 받고 게재합니다.
셀카. ‘이환천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소개팅. ‘이환천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알람. ‘이환천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연애학. ‘이환천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용돈. ‘이환천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월요일. ‘이환천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직장인. ‘이환천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집. ‘이환천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희망연봉. ‘이환천 문학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