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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

김영하- 위대한 개츠비

by 아잘 2013. 7. 22.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 명중한 자리'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자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 아니 그 여자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자기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한다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상투적 로맨스의 무덤에서 부활해 하늘로 승천한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그가 인류에 공헌했다거나 뭔가 엄청난 업적을 쌓았기 때문에 붙은 수식이 아니다. 그는 무가치한 존재를 무모하게 사랑하고 그러면서도 의연하게 그것의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여전히 자신의 상상속에만 머문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위해하다. 따라서 그 위대함에는 씁쓸한 아이러니가 있으며 불가피한 자조의 기운이 스며있다.

 

데이지는 이후 등장하게될 수많은 현대적 여성 캐릭터의 모델이다. 우리는 이런 여성들을 심지어 쇼퍼홀릭같은 친미?? 소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뭔가를 원하고, 그러면서도 그 결과에는 무심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 우리는 그런 여자들을 알고 있다. 고개만 옆으로 돌려도 그녀들이 우리곁을 지나간다.

 

위대한 개츠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 앞에는 통속적 연애소설의 세계에 빠져 현실에서 허우적거리다 파멸해버리는 보봐리 부인이 버티고 서있다. 개츠비는 비록 남자이지만 통속적이고 상투적인 거부의 이미지에 스스로를 복속시키고 그럼으로써 파국에 이른다는 점에서 보봐리 부인과 같은 족속이다. 동시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애초에 설정한 자신의 환상속에서 나오려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저 라만차의 방랑기사, 돈키호테의 후예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데이지와 개츠비는 월츠를 추는 두명의 댄서처럼 서로 떼어놓기 어려워진다. 데이지는 사랑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지고, 개츠비는 자기자신의 이미지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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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군가 나에게 이 소설을 단 한줄로 요약해 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라고. 개츠비에게는 데이지라는 목표가 있었고, 데이지에게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지향이 있었다. 지친 윌슨은 엉뚱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몸이 뜨거운 그의 아내는 달려오는 자동차를 잘못보고 제 몸을 던진다. 작가인 피츠제럴드 마저도 당대의 성공과 즉각적인 열광을 꿈꿨다. 그러나 그 표적들을 향해 쏘아진 화살들은 모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난대없는 곳으로 날아가 비로소 제대로 꽂히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문학동네 김영하 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