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돕는 것이 최구식 의원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젊은층 투표율이 선거에 영향을 많이 줄 것으로 보고 투표소를 못 찾게 하면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겠나 생각했다.”

서울시장 ‘선거 방해’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 출신 공아무개씨가 경찰에 진술한 내용이다. 10월 26일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자행됐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선거캠프 ‘홈페이지 테러’ 사건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의 목적은 ‘젊은층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돕기’ 등이라는 얘기다. 핵심은 누가 뭐래도 이번 사건의 배후, 진짜 ‘몸통’을 찾는 일이다. 경찰은 예상대로 꼬리 자르기 부실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12월 9일 오후 공씨의 '단독범행'이라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정치권 안팎의 많은 인사가 경찰 수사를 예견했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수행비서가 주도한 단독범행인 것처럼 결론을 내리고 윗선은 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러한 예측은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언론은 12월 8일 오후 ‘속보’라는 타이틀까지 달면서 공씨가 단독범행을 자백했다는 경찰 주장을 전했다.

©CBS노컷뉴스

 

그러나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 한 명이 윗선의 지시 없이 수억 원의 비용이 소요될 수 있고, 최고 10년형에 이를 정도의 사법적 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중범죄’를 술자리 말장난처럼 추진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소설 같은 얘기’를 믿을 사람들은 거의 없다.

검찰이 대규모 수사팀을 구성해 경찰 수사를 사실상 재수사하겠다는 전하는 것도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현오 경찰’은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조직의 중차대한 문제의 방향타가 될 수도 있었던 이번 수사를 예상대로(?) 꼬리 자르기 부실수사로 결론을 내리면서 스스로 궁지에 몰렸다.

경찰이 윗선 개입 의혹을 서둘러 진화한다고 논란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경찰 발표는 한나라당도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실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공씨의 입에 의존한 결과 발표는 근본적인 한계를 담고 있다.

게다가 ‘선관위 테러’ 사건을 풀어줄 중요한 열쇠인 10월 25일 저녁 술자리에 박희태 국회의장 김아무개 비서는 물론 청와대 박아무개 행정관도 있었던 게 드러났다. 경찰은 청와대 박아무개 행정관을 소환해 조사했다. 박 행정관은 박희태 국회의장실 김아무개 비서 등과 저녁 자리에 동석했으며 김 비서는 자리를 마친 이후 강남 룸살롱으로 공 비서를 불러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행정관은 강남 룸살롱에는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녁 술자리에서 선관위 테러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지 여부 등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가 강남 룸살롱 자리에서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에게 ‘선관위 테러’ 문제를 상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

한겨레 12월 9일자 6면.

 

10월 25일부터 10월 26일 새벽까지 이어진 저녁 자리와 강남 룸살롱 자리 등에 청와대 행정관(룸살롱은 가지 않았다고 주장),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 등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와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가 사건이 불거진 이후 사표를 제출했다고는 하지만 사건 당시 그들의 직책은 엄연히 국회의장 비서와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수행비서였다.

경찰은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지만, 검찰 수사도 예고돼 있고, 국회 국정조사나 특별검사제 도입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조선일보는 12월 9일자 사설에서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야권이 요구하는 방식에 따라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여당은 야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와 특검을 받겠다고 신속하게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의 ‘진짜 몸통’을 찾는 작업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조승수 의원은 “경찰은 사건의 몸통인 '윗선 개입'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하고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 또 한 번 무능함을 증명했다. 이 건은 결국 경찰이 여전히 '정권의 시녀'이자 '검찰의 도우미'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