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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브렉시트 이끈 정치 선동 - 김윤태

by 아잘 2016. 7. 6.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8595



브렉시트 이끈 정치 선동, 새누리당은?

2016.07.05 07:18:07
                 
[김윤태 칼럼] 세계화의 어두운 모습과 정치인의 책임  

1990년대 내가 영국에 있을 때 이야기이다. 1990년 영국 정부는 유럽경제공동체가 추진하던 유럽환율제도(ERM)에 가입했다. 당시 경제 전문가들은 유럽환율제도에 가입하지 않으면 경제적 재앙이 닥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입한 지 2년 만에 1992년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이자율이 급등했다. 당시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영국 사람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이번에도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로 영국 경제에 큰 타격을 받을 거라는 경제 전문가의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국민 투표에서 영국인은 탈퇴를 선택했다.
  
나는 1달 전 <경향신문> 칼럼에서 영국의 국민 투표에서 경제와 안보의 이익을 고려하는 영국인들이 잔류를 선택할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그런 예측은 빗나갔다. 잔류로 인한 이익에도 불구하고 탈퇴가 여론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상당수 저소득 노동자들의 재정 위기와 이민의 증가에 대한 불만이 더 컸던 것이다. 장기적인 경제적 계산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민자와 유럽연합 재정 분담금에 대한 거부감이 탈퇴로 이끌었다. 이는 국민 투표가 이성보다 감정의 영향을 더 받았음을 보여준다. 1992년 파운드화 폭락처럼 경제 전문가의 판단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치 엘리트의 책임 

영국의 국민 투표는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국민 투표에서 보수당의 절반 의원들과 대다수 노동당, 자유민주당, 스코틀랜드국민당 의원들이 반대했다. 찬성하는 의원은 보수당의 절반 의원과 영국독립당 의원들이었다. 하원의원 650명 가운데 500명이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했다. 그러면 이들은 민심을 거스른 것인가? 투표 결과만 보면 정치 엘리트들은 경제 전문가와 손을 잡고 저소득 노동 계급은 극우파 정치인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
  
3년 전 총선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국민 투표라는 승부수로 보수당 내 탈퇴파를 제압하고 영국독립당을 약화하는 전략을 세웠지만 참담하게 실패했다. 역대 최악의 총리로 기록될 수 있다.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당수도 노동당 172명 의원들의 불신임을 받고 큰 타격을 받았다. 노동당의 정치적 입지도 크게 약화하였다. 노동당은 자신이 대변하려는 노동 계급에 거부당한 것이다. 이 점에서 노동당은 더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

노동 계급에 거부당한 노동당의 위기 

나는 영국 노동 계급이 갑자기 '편협한 국수주의자와 인종주의자'로 돌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외국인, 이교도, 심지어 유럽의 혁명가에게 관대한 나라였다. 유럽의 전란에 휩싸일 때 수많은 유럽 난민들이 영국에 정착했고, 유대인들도 이주하였다. 마르크스, 마치니, 바쿠닌, 레닌 등 무수히 많은 혁명가가 영국으로 피난했다. 1864년 독일에서 건너온 이주 노동자가 대거 참여한 국제노동자협회가 창립된 것도 바로 런던이었다. 독일에서 건너온 베른슈타인은 영국 노동 계급의 '문명화된 예절'에 감탄하기도 했다. 나치 독일을 피해 프로이트, 곰브리치, 포퍼, 하이에크 등 수많은 지식인이 영국으로 피신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자메이카에서 이주한 많은 흑인 노동자들이 영국 경제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21세기 영국의 노동 계급은 (주로 동유럽) 이민자들이 영국 경제에 도움이 되기보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연합 탈퇴로 저소득층 가정이 타격을 받을 거라는 예측도 무시되었다. 사실보다 감정이 중요하다. 정치인들은 이런 감정을 이용했다. 잔류를 지지한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캐머런 보수당 총리는 '이민자의 아이들에게 복지 지불 중지'을 공언했다. 고든 브라운 전 노동당 총리도 집권 당시 '영국 일자리는 영국인에게'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민자들이 복지 혜택을 누리고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논리를 널리 확산시켰다. 이민자는 속죄양이 되었다. 영국 노동 계급과 취약 계층의 고통과 불안을 해결하려는 정책보다 겉으로 드러난 반이민 정서에 편승한 것이다.

정치권의 대안 제시가 중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뿐 아니라 이민에 반대하는 미국의 트럼프 등장, 유럽의 극우파의 확산은 세계화 (그리고 유럽화)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된 하층민들이 외국인 배척이라는 정치적 극단주의와 배외주의에 휩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세계화 과정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박탈감이 커질수록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에 이끌릴 수 있다. 북한의 안보 위협과 편협한 지역주의로 국민을 분열시킬 수 있다.

지난 20년간 급속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삶의 토대가 무너진 비정규직, 청년실업자, 저소득층의 고통을 해결하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민주-진보 세력도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오만한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의 반발로 예상하지 못한 과분한 지지를 얻은 야당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