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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는 어렵습니다, 왜냐고요?

by 아잘 2015. 3. 9.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807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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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는 어렵습니다, 왜냐고요?

등록 : 2015.03.04 15:12수정 : 2015.03.04 19:21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만찬 자리에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⑨ 정치부 기자들 (2)

지난주에 이어 정치부 기자들 얘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정치부 기자는 어렵습니다. 누구나 정치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구나 정치를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국무위원 가운데 누가 가장 어려울까요? 교육부 장관이라고 합니다.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에게 보고를 하면 다른 장관들은 듣기만 합니다. 전문적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법무부 장관이 발언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교육부 장관 보고에 대해서는 다른 장관들도 한마디씩 거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장관들도 학부모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 정책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육부 장관이 어렵습니다.

정치부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나 다 정치 전문가입니다. 5년에 한번씩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고 5년 내내 위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우리 유권자들입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라고 자기 친구처럼 부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 옛날 무서웠던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국민들은 대개 자신이 정치를 좀 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정치 좀 안다하지만…‘정치 혐오증’

저는 택시를 타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택시기사분들 중에는 차내 거울로 제 얼굴을 흘끗 쳐다보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실시간 라디오 뉴스로 ‘무장’한 탓인지 구체적인 팩트에 무척 밝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손님은 정치인이 아닌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사실 정치인들 다 도둑놈들이지요. 맨날 싸움박질이나 하는 국회 그거 없애도 됩니다.”

‘반정치 이데올로기’나 ‘정치 혐오증’에 감염된 경우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택시기사분과 정상적인 대화를 이어가기는 무척 힘이 듭니다. 그럴 경우 저는 “정치인들도 중요한 일을 꽤 많이 합니다. 법도 만들고 예산 심의도 하지요. 정치인들이 없으면 관료들과 재벌들이 나라를 다 말아 먹을겁니다”라는 정도로 가볍게 반박을 하고 입을 다물곤 합니다.

그래도 택시기사는 괜찮은 편입니다. 지식인들의 반정치 이데올로기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몇년 전 헌법학회장까지 지낸 원로 교수님께서 여러 사람 앞에서 안철수 의원이 2012년 제기한 ‘국회의원 30% 감축’이 옳다고 하시더군요.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찬성이라는 근거까지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이건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지금 우리나라에 연구도 하지 않고, 학생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대학 교수가 너무 많으니 30%쯤 줄이자고 제안한 뒤 찬성과 반대를 묻는 여론조사를 하면 어떻게 나올까요. 아마 찬성 의견이 더 많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수 30%를 줄이는 것이 옳은 일인가요?”

교수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정치부 기자가 힘든 것은 반정치 이데올로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일도 안하고 세비나 받아먹는 한심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부 기자들은 그런 국회의원과 술이나 마시고 다니며 정치에 개입하는 부패한 기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울하지만 정치부 기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정치부 기자의 조건으로 저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애정을 꼽고 싶습니다. 야구를 싫어하는 허구연씨나 하일성씨를 상상할 수 없듯이 정치와 정치인을 싫어하는 정치부 기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정치부를 잠시 경험한 기자들 중에 “내가 만나봐서 아는데 정치인들 진짜 한심하고 쓸 데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그는 정치와 정치인을 전혀 모르는 기자입니다. 정치부 기자들은 우리 사회 기득권세력이 끊임없이 퍼뜨리고 있는 반정치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울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실은 정치가 유일하게 약자들의 편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자로서의 냉철함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정치부 기자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주관적 기대’와 ‘객관적 분석’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 그렇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희망합니다.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 확신으로 바뀌어갑니다. 그러나 확신과 실제 승부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중에서 어느 정당이 이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영호남 의석수 차이, 양당 선거참모들의 분석을 근거로 새누리당이 1당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야당에 애정이 깊은 원로 한 분이 강하게 항의를 하셨습니다. 자신의 주위에는 새누리당을 찍겠다는 사람이 전혀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민주당이 1당이 될 것 같은데, 한겨레 기자가 왜 잘못된 예측으로 야당과 지지자들의 사기를 꺾느냐는 것이었습니다.

2012년 대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치 해설가 중에 문재인 후보의 막판 대역전을 점친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특히 야당과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예측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 류우종〈한겨레21〉기자 wjryu@hani.co.kr
정치부 기자도 좋아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있습니다. 싫어하는 정당과 정치인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엉터리 예측을 하면 안됩니다. 편파적인 기사를 써서도 안됩니다. 정치부 기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잃어서는 안되는 것은 바로 냉철함과 분별력입니다.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습니다.

여야가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정치부 기자들도 어느 한쪽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기사를 쓰면서 일방적으로 그 쪽 편을 들면 곤란합니다. 독자나 시청자들을 오도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정계에 진출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에게 언젠가 “왜 기자를 그만두고 정치를 했느냐”고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그는 뜻밖에도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열정적이고 정의감이 있었지만 기자로서 가장 중요한 냉철함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정치로 길을 돌렸다. 당신은 나처럼 냉철함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게 무슨 말인지는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이만섭 전 의장은 국회의원이 아닌 기자 시절 국회 속기록에 이름을 올린 사람입니다. 4·19 혁명 뒤 국회에서 자유당 부정선거 책임자들에 대한 구속동의안이 상정됐습니다. 그런데 국회에서 여전히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던 자유당 의원들이 구속동의안을 부결시켰습니다. 2층 기자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만섭 기자가 “이 자유당 도둑놈들아”라고 외쳤습니다. 사회를 보던 국회부의장이 “이만섭 기자. 시끄러워요. 조용히 하세요”라고 말했고, 이 말이 속기록에 들어간 것입니다.

 

정치부 기자 잘하려면, 불가근 불가원

2004년 한나라당 주도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을 때 현장에 있던 기자들 중에 눈물을 흘린 기자가 있습니다. 분노의 눈물일 수도 있고 슬픔의 눈물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울었습니다. 그 기자는 정치부를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가치와 가치가 충돌하는 정치 현장에서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정치부 기자를 비교적 오래 하고 있는 저도 사실은 냉철함과 분별력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정치부 기자들은 정치인들과 기자-취재원을 떠나 깊은 인간적 유대를 맺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에 의하면 어느 정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기자들이 정치부 기자를 오랫동안 잘 할 수 있습니다. 기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란 것이 있는데 정치부 기자들이야 말로 꼭 지켜야 하는 원칙인 것입니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 연합뉴스

 

정치부 기자를 하다가 정계로 진출하는 기자들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설을 하다가 선수로 뛰어드는 것이니 잘못이라고 보는 시각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자들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오히려 공적 현안을 둘러싼 논쟁으로 단련된 기자들이야말로 정치를 하기에 좋은 자원들입니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도 기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성공한 수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자 출신이 정치인으로 변신해 성공한 경우가 많습니다. 원로급으로는 최병렬 홍사덕 김원기 임채정 전 의원, 현직으로는 박영선 신경민 민병두 김영우 신성범 의원이 떠오르네요. 아, 정동영 전 의원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을 텐데 모두 다 거명할 수가 없어서 생략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렇습니다. 저처럼 편집국장을 했거나 언론사 사장 등 고위직을 지낸 사람은 국회의원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몸담았던 언론사의 공정성이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에 관심이 있는 젊은 기자들은 기회가 오면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좋은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정치도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