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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근혜 대통령 2015 신년 기자회견

by 아잘 2015. 1. 29.

 

 

http://www.huffingtonpost.kr/cheolhee-rhee/story_b_6519994.html?utm_hp_ref=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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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오만한 모습에 부실한 내용, 최악의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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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게 붙은 여러 찬사 중 하나가 '콘크리트 지지율'이다. 어지간한 사건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지지율, 큰 사건 뒤에 일시적으로 흔들리더라도 금방 회복하는 지지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 지도자, 유력 대선후보로 등장한 후 그의 지지율이 단기간 내에 폭락한 경우는 없다.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일관되게 자신의 지지율을 지켜왔다. 대단한 강점이다.

과거 미국 레이건 대통령을 테플론(Teflon) 대통령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테플론이란 소재의 잘 달라붙지 않는 속성처럼 대통령이 숱한 실수와 스캔들에도 비판이 달라붙지 않아 생긴 말이다. 1983년에 당시 민주당 하원의원 패트리샤 슈뢰더가 만든 말이다. 레이건을 끊임없이 비판했으나 요지부동인 지지율에 민주당이 얼마나 낙담하고 곤혹스러워했을지가 이 단어에 잘 담겨 있다. 그렇듯 콘크리트 지지율이란 말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쪽의 낭패감이 묻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끔찍했던 대통령 신년회견

슈뢰더 의원은 레이건을 테플론 대통령이라고 평가한 이유로, 그가 국민과 소통하는 데 아주 능숙한 점을 꼽았다. 실제로 레이건은 국민과의 소통에 발군이었다. 오죽하면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란 별명이 붙었으랴. 박근혜 대통령이 테플론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그 이유는 레이건과 딴판이다. 박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2015년 신년기자회견에서 말했듯이 장관들과 직접 대면하는 것도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전에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질문과 답변의 기자회견도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그의 지지율은 거의 난공불락이고, 이는 여당을 짓누르고 야당을 몰아붙이는 핵심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휴대전화 RDD조사, 유효표본 전국 성인 1002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16%)에서 박대통령의 지지율은 35%로 떨어졌다. 취임 후 역대 최저다. 같은 시점의 다른 대통령에 비해서도 낮다. 이 정도 지지율이면 내각제에서는 총리가 바뀔 수도 있다. 미국이라면 의원들이 대통령 옆에 같이 서지도 않으려는 수치다. 문제는 이 지지율 조사가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행한 신년기자회견 직후에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정윤회 파동 이후 소통을 외치는 여론에 부응하기 위한 기자회견이었는데 되레 역효과가 났다. 그만큼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끔찍했다는 얘기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좋았다는 평가는 28%에 불과했다. 좋지 않았다는 응답은 40%에 달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했던 50대에서조차도 부정적 평가가 11% 포인트 더 높았다. 회견 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전보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14%, 좋지 않게 변했다는 응답은 19%로 나타났다. 속담처럼 혹 떼려다 혹 붙인 경우다. 이런 평가가 나온 배경을 짚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실언 등 작은 실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이 잘못한 게 없으니 교체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에 대해 잘한 일이라는 평가는 30%고, 잘못한 일이라는 평가는 48%였다. 박대통령이 정윤회씨의 국정개입이 사실무근이라고도 했음에도, 국정개입이 사실일 것으로 보는 입장이 42%,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입장이 23%였다. 결국 여론악화의 원인은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 더 나아가 대통령에 대한 반발 정서다. 이쯤 되면 콘크리트 지지율이란 평가는 이제 흘러간 얘기가 된 듯하다.

 

드러난 실체, 회견의 유일한 성과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던진 메시지는 간명하다. '내가 원인이다.' 화근은 '문고리 3인방'의 전횡이나 비선실세의 개입, 또는 참모들의 무능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그의 육성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됐다. 대통령이 장관들과 만나지 않는다는 세간의 의혹도 사실로 드러났고,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도 언론과 사회 탓으로 돌렸다. 국회에 출석하지 않고 사표를 낸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항명도 별것 아니라는 태도를 보여줬다. 언론과 정치권이 이구동성으로 요구하는 인사쇄신도 거부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면담 요구를 "국회에서 법안이 여야 간에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논의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끼어들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거부했다고 했다. 대통령으로서 국회를 존중해서 그랬다는 의미다. 반면 특검 여부 또한 국회의 권한임에도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은 대놓고 거부했다. 앞뒤가 안 맞는 자가당착이다. 숱한 인사 실패가 있었음에도 이렇게 말했다. "누구보다도 능력있고, 도덕성에서도 손가락질 받지 않는 사람 찾으려고 노력했다. 저만큼 관심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지독한 유체이탈 화법이다.

 

대통령이 신년에 하는 기자회견은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간이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 대통령이 소상하게 설명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보고하는 자리다. 따라서 최고 권력자의 위세를 보여줄 게 아니라 공직자로서 주권자인 국민에게 실상을 브리핑해야 한다. 이번 신년기자회견에서 보인 대통령의 모습은 오만했고, 내용은 부실했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그가 왜 그토록 대중 앞에 나서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데 주저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테플론 대통령에 빗댄 레블론(Revlon) 대통령이란 말이 쓰인 적이 있다. 레이건의 뒤를 이은 부시 대통령을 두고 1989년 작가 피터 에델만이 만들어냈다. 레블론은 화장품 브랜드다. 큰 문제에 단지 화장술 해법(cosmetic solutions)을 제시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조어다. 박대통령의 집권 2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뭐 하나 제대로 개혁된 것이 없고, 경제를 비롯해 나라는 여전히 엉망이다. 지지율 착시효과로 테플론 대통령으로 보이던 박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계기로 레블론 대통령이라는 자신의 실체를 드러냈다. 이게 성과라면, 우리는 참 우울한 시대를 살고 있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