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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축제용 산천어의 운명

by 아잘 2015. 2. 9.

 

 

http://www.huffingtonpost.kr/2015/02/07/story_n_6634486.html

 

 

축제용 산천어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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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 2003년 시작된 화천 산천어축제는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지자체 축제입니다. 강원도 인구 2만4000여명의 작은 시골 읍내의 냇가는 ‘한국전쟁 때 중공군들이 내려온 이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긴 처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년 1월 인파로 가득합니다. 연어의 일종인 산천어는 지난해 133만명, 올해 150만명을 끌어들였습니다. 축제용으로 생산되는 산천어의 생애를 따라가봤습니다.

산천어가 선택된 건 어찌 보면 우연이었다. 산천어는 자신들의 인구-아니, 어구(魚口)라고 해두자- 대부분이 강원도 어느 산골의 작은 냇가에 떨어져 부대끼다가 생을 마감하리라는 사실을, 연어과 물고기의 조상인 ‘에오살모 드리프트우덴시스’(Eosalmo driftwoodensis)가 지구에 나타난 4500만년 전부터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기묘한 산천어의 과밀현상은 2003년 강원도 화천에서 시작됐다. 화천 산천어축제의 기원에 대해 정갑철 전 화천군수는 지난 5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230개 지자체 시장·군수가 되면 자기가 하려는 게 있어요. 예산 없고 자본 부족하면 제일 쉬운 게 축제입니다. 저도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죠. 그때 우리 기획자가 가져온 아이템이 열개였습니다. 그중 하나, 산천어를 듣는 순간 딱 필이 꽂혔어요. 산천어 어감이 좋아서 듣는 사람 생각이 프레시해지잖아요. 산(山)자, 천(川)자도 화천의 청정 이미지와 맞고요.”

양어장 물고기 푼 ‘실내 낚시터’

지난달 29일 자동차는 한 시간 만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춘천~화천 간 5번 국도에 들어서자마자 맞은 것은 ‘산천어 낚시도구 왕창세일’ 펼침막. 한 상인이 팔을 위아래로 휘두르며 멈춰가라고 신호했다. 화천까지 30여㎞ 남았는데 축제 분위기로 춘천까지 흥성거렸다. 얼마 안 되어선 ‘산천어축제 전 마지막 낚시점’이 나타났다. 적어도 다섯개의 ‘마지막 낚시점’ 펼침막을 뒤로하고 제12회 화천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화천군 화천읍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얼음낚시 도구는 읍내를 동쪽으로 끼고 도는 화천천 축제장 안에서도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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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얼어붙은 화천천은 평일인데도 인파로 가득했다. 냇가에는 1만2000개의 얼음구멍이 바둑판처럼 뚫렸고,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좁은 구멍에 집중하고 있었다. 낚시터는 현장 낚시터, 예약 낚시터 그리고 외국인 낚시터로 분류돼 있었다. 현장 낚시터는 당일 도착 즉시 입장료 1만2000원을 내고 들어가고 예약 낚시터는 인터넷으로 예약한 사람들이 들어간다. 외국인 낚시터는 외국인 관광객만 들어갈 수 있다. 오렌지색 점퍼를 입은 자원봉사자가 다가와 말했다.

“외국인 낚시터에는 산천어를 많이 풀어요. 외국인 관광객은 관광버스로 오거든요. 빨리 잡고 다음 일정지로 가야 하니까. 어, 저기, 스톱! 스토~옵!”

오렌지색 점퍼는 얼음구멍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50대 홍콩 여성 둘에게 달려가 손가락 셋을 내밀었다. 옆에는 이미 낚은 산천어 세 마리가 쌓여 있다.

“스리(3), 스리, 스리!”

산천어축제장에서는 산천어 세 마리 이상 가지고 나가면 안 된다. 넘치는 수량은 출구에 마련된 ‘나눔통’에 넣어야 낚시터를 나갈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외국인 낚시터는 예외라면서 그가 말했다.

“나중에 필리핀 대절버스 오는데 풀어놓은 거 다 잡아가면 그 사람들이 잡을 게 없잖아요. 규율이 필요합니다. 규율.”

사실 야생 산천어(학명 Oncorhynchus masou)가 화천에 산 적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산천어는 연어과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살면 시마연어, 육지에서 살면 산천어다. 우리나라 연어는 태백산맥 동쪽 골짜기, 즉 영동지방에서 태어나 동해 쪽 하천을 따라 바다에 나가 살다가 알을 낳으러 돌아온다. 반면 축제가 열리는 화천천의 물은 한강에 합류해 서해로 나간다. 화천에서 동해로 나가는 물은 없다. 산천어축제의 산천어는 양어장에서 기른 물고기들이다. 2003년 첫 축제 때부터 그랬다. 손가락만한 빙어보다 팔뚝만한 산천어의 입질이 낚시꾼의 손맛을 자극하기 때문에 화천천 상·하류를 그물로 치고 산천어를 풀어넣은 것이다. 쉽게 말해 ‘실내낚시터’ 아이디어를 야외로 가져온 셈이다.

산천어는 맑고 차가운 물에서 산다. 10~11월 산란해 치어로 성장한 산천어는 계곡에서 한번 더 겨울을 보낸다. 몸통이 은빛으로 변하면 바다에 나가라는 신호다. 이런 ‘스몰트’(은화) 현상이 나타나는 산천어는 5월께 오호츠크해로의 긴 여행을 떠나며 시마연어로서 삶을 시작한다. 은빛으로 변하지 않은 산천어는 산골에 남는다. 산천어를 연구해온 성기백 한국어업피해연구소장이 2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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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연어가 되는 건 대부분 암컷이고 산천어로 남는 것 수컷입니다. 시마연어는 바다에 나가서 일년을 보내고 4월부터 10월까지 돌아오지요. 6~7월 비 올 때를 이용해 상류까지 올라가요. 수량이 많아야 올라가기 좋으니까요.”

그 뒤부터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의 위대한 이야기와 똑같다. 거친 여행 끝에 시마연어는 산천어의 고향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 과거 경북 울진 이북의 하천과 계곡에는 이런 산천어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험과 도전의 삶을 사는 물고기들은 많이 남지 않았다. 남은 물고기들도 양어장에서 키우다 빠져나간 일본 산천어와 섞인 종들이다(산천어로 종은 같지만, 유전적으로 지역 차이만 난다. 마치 인간이 종이 같지만 각각의 민족으로 나뉘는 것과 비슷하다). 유전자 분석상 순수 토종 산천어는 최근 들어서야 강원도 비무장지대 안 고진동, 오소동, 송현동 계곡 등 세 곳에서 발견됐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2015년 한반도의 산천어 대부분은 인간에 의해 대량생산돼 대량소비된다. 최소 3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야생 산천어와 달리 1년 만에 단조로운 생을 마친다. 그들의 창조주는 인간, 고향은 시멘트 바닥의 양어장 그리고 무덤은 처음 여행해 본 화천천의 얼음판이다. 이런 짧은 궤적의 삶을 산천어 약 49만 마리가 지난 1월10일~2월1일 3주간의 축제 때 마쳤다. 화천군 농업정책과의 최석림 계장은 “산천어축제는 한반도 산천어의 시작과 끝”이라고 말한다.

전국 17개 송어양식장이 산천어축제를 위해 매년 화천군과 계약을 체결한다. 배정받은 물량에 따라 양어장은 10~11월께 인공수정에 돌입한다. 약 50g의 치어로 성장하는 이듬해 3~4월께 군청 공무원들은 양어장을 돌며 치어들이 잘 크고 있는지, 병이 없는지 등을 검사한다. 12월이 되면 치어는 250g의 굵직한 성어로 큰다. 산천어들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하기 직전, 다시 검사원들이 다가와 30마리를 무작위로 떠서 무게를 재고 최종 출하량을 조정한다. 축제는 1월 중순에 시작한다. 각 양어장의 산천어들이 차례로 화천으로 향한다. 출발 닷새 전부터 밥을 굶긴다. 최석림 계장이 지난달 29일 말했다.

“산천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차에 싣고 오밀조밀 가다 보면 토사물을 내놓고 죽는 것도 있고 기절했다가 깨어나기도 하고….”
산천어는 1급수 서식 어종이다. 토사물에 오염된 활어차량의 물은 산천어에게 연쇄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산천어는 적어도 축제 투입 일주일 전까지 화천군이 운영하는 양육장에 도착해야 한다. 산천어들이 축제에 투입되기에 앞서 대기하는 곳이다. 최 계장은 “각 양어장의 수온이 다르기 때문에 이곳에서 하루에 1도씩 화천천의 평균 수온 2도까지 천천히 낮춘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 화천군 하남면 논미리에 있는 산천어 양육장을 가보았다. 양육장은 거대한 4층짜리 계단이었다. 계단을 따라 8개 수로가 흐르고, 각 층에서 산천어가 헤엄쳤다. 가까이 다가가니 물고기들은 흠칫 놀라 타원형을 그리며 선회했다. 가끔 그 대열에 끼지 못한 물고기가 있었다. 넙치처럼 엎어져 떠 있거나 방향감각을 상실한 외톨이들이었다. 오후 4시가 되자 활어차량이 도착했다. 양육장에서 일하던 청년이 설명해주었다.

“오후 4시30분 외국인 낚시터에 들어갈 산천어 100㎏입니다.”

1㎏에 보통 산천어 네 마리를 친다. 400마리가 뜰채에 낚여 활어차량에 입수했다. 하루에 여섯번, 한 시간에 한번씩 현장·예약·외국인 낚시터에 이렇게 산천어가 공급된다. 산천어에게는 계속 먹이가 공급되지 않는다. 산천어 회를 떴는데 사료 찌꺼기가 나올 수가 있다. 지저분한 산천어를 관광객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산천어는 ‘황금반지 반돈’(200마리), ‘황금반지 한돈’(100마리)의 표시를 꼬리에 찬다. 이 산천어를 낚은 관광객은 황금반지를 선물로 받는다.

활어차량을 따라갔다. 외국인 낚시터에 도착한 산천어는 다시 뜰채로 건져져 파란 플라스틱통에 들어갔다. 그사이 화천천 얼음구멍 위에는 밑동을 잘라낸 빨간 플라스틱통이 세워졌다. 일꾼들이 파란 플라스틱통을 빨간 플라스틱통에 들이부었다. 빨간 플라스틱통이 감싼 얼음구멍은 산천어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놀란 산천어의 파닥거림은 깔때기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잔상에 지나지 않았다. 일꾼들의 솜씨가 워낙 능숙하고 일상적이어서 식품공장의 풍경이 연상됐지만, 그러나 산천어에게는 그들의 인생-어생(魚生)이라고 해두자-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공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1년여 전 가을, 인공수정으로 시작된 그들의 어생에서 처음 만난 야생의 물은 시마연어가 헤엄친 오호츠크해만큼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수중카메라 영상을 보면, 투하된 산천어들이 떼를 지어 얼음바닥 밑을 선회한다.

그러나 이 ‘자유의 잔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얼음구멍 밑에 떨어진 미끼를 물고 산천어들이 속속 잡혀 올라왔기 때문이다. ‘산천어를 푼 뒤 10분을 노리라’는 게 산천어축제장에서 최고 강태공이 되기 위한 철칙이다. 산천어의 자유는 대부분 찰나로 끝나고 만다.

알루미늄박에 싸여 난로 속으로

이튿날 아침 현장낚시터에 갔는데, 화천읍내에 사는 김시원(75)씨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었다. 그는 젊었을 적 했다는 빙어 낚시 얘기를 꺼냈다. 얼음낚시는 원래 빙어 낚시였다.

“대장간에서 얼음끌을 벼려다가 얼음을 깨고 잡았어. 구더기 사서 미끼에 달면 어떤 때에는 일고여덟 마리가 달려나와. 튀겨도 먹고 조려도 먹었지. 연어는 그때 없었고. 그냥 할 일도 없고 심심하니까 이곳에 나와. 집에 가져가서 회 떠 먹고….”

축제장 구석의 한 40대 남성은 산천어 여남은 마리를 쌓아놓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어떻게 잡았느냐’고 묻자, 미끼를 보여주며 그가 말했다.

“웜 낚시예요. 벌레처럼 보이니까 물고기가 금방 물어요. (물고기 모양의) 메탈보다 훨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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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어는 움직이는 물체에 좀더 집요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벌레 모양의 실리콘이었는데, 바람에 날려 꼬물꼬물 움직였다. 거짓말 하지 않고 정말 5분에 한 마리씩 튀어올랐다. 어떤 물고기는 얼음 위로 나오고서도 미끼를 놓지 않았다. “가져가세요” 하고 그가 인정을 베풀자, “복받으세요” 하면서 구경꾼들은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응급을 호소하는 물고기를 낚아채갔다. 산천어는 이렇게 생을 마감한다.

죽은 산천어는 알루미늄박의 관(棺)에 싸여, 축제장 구이터 난로의 묘(墓) 속으로 차례차례 들어가 화장된다. 난로에는 산천어를 알루미늄박째 넣는 58개 구멍이 있다. 산천어 구이를 위해 화천군이 특수 제작한 것인데, 최대 300마리를 굽는 난로도 있다고 한다. 산천어는 10분 동안 고온에 구워진 뒤, 밖에 나와 5분 동안 말려진다. 어떤 산천어는 회센터로 가서 박박 씻긴 뒤 잘게 잘라진다. 자신이 낚은 산천어를 가져온 관광객은 한 마리당 2천원을 내고 굽거나 회 떠 나온 요리를 와사비(고추냉이) 간장이나 붉은 초장에 찍어 먹는다. 은빛 비늘은 사라졌고 살은 흐물흐물하게 터졌다. 산천어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잡히지 않은 산천어는 축제가 끝난 뒤 화천천 상·하류의 그물을 철거하면서 최종적으로 포획된다. 이 물고기들은 산천어 횟집의 횟감으로 넘겨지거나 산천어 어묵의 재료로 쓰인다. 지난 1월1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열린 축제를 위해 대량생산된 산천어 총 48만7650마리(121.89톤)가 인간의 손맛과 입맛에 봉사하고 짧은 한 해의 삶을 마감했다. 올해 축제에는 모두 150만명이 참가해 역대 최다 관광객 수를 갱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