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마틴과 함께 해군 함대를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자지라> <뉴욕 타임스> 등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국민에게도 중대한 영향을 끼칠 이 거래는 아직까지 많은 한국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듯하다.

2011년 8월6일, <뉴욕 타임스>에 여성학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에세이를 기고함으로써 전 세계 수백만 독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다음 날, 아랍권 대표 언론 <알자지라>도 스타이넘의 에세이를 보도했다. 이후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전 세계 언론이 스타이넘의 글을 옮기거나 방송하거나 인용했다. 제주도에 함대를 배치하는 데 따른 복잡한 문제가 사실상 처음으로 국제사회의 엄정한 공론장에 오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향후 한국과 한국인, 나아가 한국 외교정책의 향방을 결정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제주도 해군기지에 대해 소극적 동의를 하는 이들은 이토록 중요한 사안에 대해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는 일반 한국인이다. 제주도 강정마을을 지역구로 둔 김재윤 의원(민주당)은 “이 기지를 통해 한국군의 경계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바뀐다는 사실이 국회에서 전혀 논의된 바 없다. 또한 제주도 해군기지로 인해 한국이 중국의 적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국민과 토론해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과거 한국 정부는 미국과 중국 간 외교에서 균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해군기지 건설을 통해 이명박 정부는 ‘US 블록’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US 블록’이란 미국 국방부에 군대를 예속시키는 국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 서태평양 패권 다툼에서 눈에 띄게 우위를 보이기 시작한 중국을 누르기 위해 한국 정부가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5월 충남 태안반도 서쪽에서 해군 2함대가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한국 상황, 매카시 광풍 때와 비슷


이런 움직임은 남북 접경지대에서 북한의 소행으로 알려진 일련의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해군이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한 연안 경비를 주요 임무로 수행하기보다는 중국의 유조선을 위협하는 데 열중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록히드마틴의 ABM(탄도요격미사일)과 레이더 시스템을 탑재하고 현대가 건조하는) 현대-록히드 함대의 첫 번째 구축함이 최근 론칭됨으로써 한국 해군은 미국의 국제적 레이더와 미사일 발사망에 연계됐다. 이로써 한국은 제2의 냉전에 발을 담그게 된 셈이다.

미국의 ABM 혹은 이른바 ‘미사일 방어망’은 선제공격용 무기로, 중국이 보유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폭발시키도록 설계된 것이다. 중국은 미국 주요 도시를 목표로 하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통해 미국이 정당한 이유 없이 중국을 상대로 핵공격 위협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있다. 이런 미사일 방어망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을 마련하겠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는 지금 교육·의료·지역경제 활성화 같은 복지 이슈를 외면하고 (병적이고 과도한 군비 지출을 통한) 기업 지원 정책에 열중하고 있다.

이 같은 군비 확장 정책은 한 나라의 경제를 위협한다. 핵무기 구입에 대한 공적 토론이 제한됐던 냉전 시기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냉전에 동참하게 된 한국에서도 지난 4년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한국 정부는 시민단체를 억압하고, 언론인을 잡아들이고, ‘국가 안보’를 명목으로 시민에 대한 기소를 남발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가 억압되면서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서울광장 등에서의 정치적 참여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 또한 미국의 마녀사냥 시대와 비슷하다. 20세기 중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 리처드 닉슨 하원의원, 에드거 후버 미국연방수사국(FBI) 국장 등이 주도했던 그 공포의 시대를 한국인도 기억할 것이다.

스타이넘은 “ABM의 제주도 배치는 환경적 재앙일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위험한 도발이 될 수 있다”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스타이넘은 한국이 신냉전에 개입할 때 당면하게 될 가장 막대한 피해는 언급하지 않았다. 군비 확장 경쟁은 하와이·오키나와·필리핀을 지상낙원에서 위험천만한 쓰레기 폐기장으로 전락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권의 관심을 국민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고 전쟁을 준비하면서 이익을 보는 기업에 가깝게 한다.


현대·삼성 이익 위해 제주를 망치다니


ABM 기지가 국가 안보를 강화한다는 증거도 없다. 미국 국방부 전직 관료나 로켓 전문가들은 “미사일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제주도 혹은 다른 곳에 ABM 기지를 세우는 방법으로 국가 안보를 높일 수는 없다”라고 증언해왔다. 실제로 이 같은 방법으로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여러 번 증명된 바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경우 거짓 정보를 흘림으로써 언론이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을 수십 년 동안 성공적으로 막아왔다.

스타이넘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최성희라는 또 다른 활동가도 있다. 그녀는 불도저 같은 건설 장비 아래 눕는 행위를 반복하는 제주도의 예술가이다. 그녀는 최근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업무(특히 약 10억 달러짜리 기지를 짓기로 계약한 삼성의 영업)를 방해했다는 최씨에 대한 혐의는 비판적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아마도 이 점을 미사일 로비 단체는 가장 두려워할 것이다. 그녀는 감옥에서 풀려나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 “기지 건설로 혜택을 보는 것은 군대뿐이 아니다. 삼성과 대림 같은 기업들도 혜택을 본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섬 전체가 파시즘에 빠지는 것이다. 본토를 점령한 삼성 파시즘이 이제 제주를 잠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말 강한 표현이다. 만약 한국이 기업도시(company town)라면, 그 기업은 틀림없이 삼성일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표현은 오직 역사학자들만 한다. 무기 전문가 매슈 호이는 한국인들이 ‘공간무기화’에 대한 암묵적 승인을 지금이라도 거둔다면 제주 기지 건설과 신냉전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8월 초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한 매슈 호이는 특히 강정마을 주민들의 단호한 의지를 높이 샀다. “모든 기도와 시위가 매번 압도적 권력에 가로막힌다. 하지만 주민들이 굴하지 않고 이웃과 힘을 모으기 위해 평화 캠프에 참여하고자 날마다 건설 현장을 가로지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라고 그는 말했다.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숨겨진 천국 제주도가 현대·삼성 같은 대기업에 수익성 높은 사업을 안겨주려는 현 정부의 의도에 희생되기엔 너무 아깝다.”

번역·허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