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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념

자유민주주의 vs 사회민주주의

by 아잘 2011. 10. 29.

데일리안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65201

자유민주 놓고 보수-진보 뜨거운 한판 승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론’ 토론회 보수-진보 학자들 치열한 논쟁
"민주주의 이름 붙은 나라는 공산국가"-"그런데 이젠 자유까지 붙여?"
변윤재 기자 (2011.10.29 08:28:11)


이른바 ‘민주주의 논쟁’으로 번진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을 놓고 보수-진보 학자들이 양보없는 토론을 벌였다.

28일 서울 종로구 4.19혁명기념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론, 헌법, 역사’ 토론회에 참석한 보수와 진보 학자들은 모처럼 함께 자리했지만, 끝내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논쟁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들은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것이 역사교과서에 드러나야 하면, 미래세대에게 긍정의 역사, 진화의 역사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독재,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기술과 관련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짓지 못했다. 다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며 이같은 소통과 대화의 자리를 자주 마련하자고 입을 모았다.

보수를 대표한 한국현대사학회 김용직 성신여대(정치학) 교수는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시련과 발전의 역사’였다”고 평가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교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서구문명의 대표적 정치모델이며 다른 비자유 민주주의 체제보다 장기적으로는 월등한 경쟁력을 가진 체제”라며 “다만, 대한민국은 건국 초기부터 오늘날 민주주의의 진정한 유형으로 평가받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했지만, 정치세력의 분열, 이데올로기적 대립, 경제적 기반 미비, 경제적·사회적 시민세력의 중추인 중산층의 미형성, 공산주의세력의 강력한 전복적 도전 등의 대내외적 상황이 좋지 않아 자유민주주의를 실시하기에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다”고 전제했다.

충분한 토양이 없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완성된 체제가 들어오면서 체제의 불안정성은 정권에 의해 오용되거나 남용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나 편견도 여기에서 작용됐다는 것.

김 교수는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 두 가지로 분단상황과 최고권력자의 권위주의를 꼽으면서 “자유민주주의가 오용 내지는 남용되는 불행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명실상부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구현됐다”고 밝혔다.

특히 김 교수는 반공주의와 관련해 “해방 후 3년간의 갖은 역경에도 1948년 마침내 대한민국의 건국과 더불어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되었고, 이를 거부한 북한 지역은 소련식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했다”며 “분단적 상황으로 남·북한의 체제적 대립과 대결구도가 전개되자, 방어적인 목적에서 반공주의를 강화한 점은 있다”고 인정했다.

또 권위주의에 대해서도 “자유민주주의는 산업화와 이를 통한 근대국민국가 기반이 마련되고, 시민사회 혹은 중산층 사회가 작동될 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며 “산업화의 기반 결여로 인해 결과적으로 정치체제의 유지를 위한 설득적 수단보다는 억압적인 수단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라는 잠정적 조치들을 수반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 교수는 “반공주의는 자유민주주의체제 유지와 수호를 위한 방어 도구로 채택된 것에 지나지 않고, 권위주의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미래의 조건을 형성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측면이 있다”며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우선시하고, 국가의 정치권력이 국민의 주권에 기초해 작동하도록 자유선거를 주기적으로 실시하며, 자유정당제와 의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필동 4ㆍ19혁명기념도서관에서 열린 ´2011 자유민주주의 토론회´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론, 헌법, 역사´를 주제로 보수와 진보 학계가 토론을 했다.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왼쪽 세번째)가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자유민주주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중시하므로 이 틀에서 사회민주주의까지 포용이 된다”며 “이런 관점에서 다수 지배의 원칙에 근거하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민주주의, 즉 가장 발전된 형태의 민주주의인 자유민주주의와 같을 순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이승만 전 대통령은 사회민주주의를 하려던 게 아니다. 당시 자유시장이 작동하기 어려웠던 탓에 국가가 개입했던 것일 뿐”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도 강력한 대통령 권력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인 산업화를 이루려 권위주의를 택한 거다. 그때에도 유신헌법에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라는 규정을 넣음으로써 국가사회주의를 하려는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는 홉스적 자유주의자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박명림 연세대(정치학)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를 대한민국 헌법적 질서와 체제를 규명하기엔 적합한 용어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건국 헌법 등에는 사회민주주의적 요소가 나타나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1948년 건국 헌법의 가장 중요한 두 특장은 혼합정부와 균등경제체제였다”면서 “자유민주주와 시장경제는 건국정신과 건국헌법, 건국 세력들에게는 방기, 배제, 극복 또는 타도의 대상이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김구는 건설, 토지의 국유화를 주장했고 이승만은 경제정책에 공산주의를 넣자고 했다. 심지어 이승만은 ‘시장경제는 반동’이라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임시정부에서부터 민주공화국과 계획경제를 기틀로 한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합의가 있었던 만큼 “자유민주주의만을 고집할 경우 김구와 한국독립당, 송진우·김성수와 한국민주당, 이승만은 모두 국유나 공유, 계획경제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들의 설 곳이 없어진다”며 “자유민주주의를 고집하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과 건국운동 대부분을 포괄할 수 없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헌법에 들어간 것은 유신헌법이 제정되면서부터였다며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쓰였던 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설명하기에 적합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박 교수는 “굳이 자유민주주의를 쓴다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어떻게 표현할 거냐. 그들의 체제수호나 경제발전 등의 공로를 기술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진다”며 ““이념을 쪼개면 쪼갤수록 공동체를 파괴한다. 보수와 진보는 이념도 계층도 달랐지만,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뤘으므로, 오히려 민주공화국이 발전해온 역사가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라고 말했다

또 박 교수는 자유민주주의가 사회민주주의를 포괄한다는 주장에 대해 “자유와 평화, 평등, 복지 등을 포괄하는 사회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보다 더 넓은 개념”이라고 반박했다.

양측은 이어진 토론에서도 한 치의 물러섬 없는 토론을 벌였다. 양측의 입장을 평행선을 달렸고, 급기야 토론 막판 청중석에서 “민주주의가 가진 위험성을 교정하자는 측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한 건데 도대체 무슨 의미로 민주주의를 고집하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보수 측 패널로 나선 한국현대사학회장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역사학) 교수는 “우리나라는 자유와 평등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경제적으로 볼 때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두고 복지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이를 말하는 데 있어 자유민주주의 이상 적합한 표현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권 교수는 “헌법에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없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우리 헌법 어디에도 자본주의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라며 “독재에 대한 쓰라린 경험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성취도 있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쓰자는 것이나 독재라는 표현을 제외하자는 것은, 박정희 시기의 강력한 독재 혹은 리더십을 통해 경제를 획기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으며 아울러 중산층의 폭을 넓혀 자유민주주의의 증진에도 이바지했음을 알려주자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보수측 패널인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정치학) 원장은 “지난 60년간은 가장 자유와 민주가 발전된 시기였다”며 “사적 영역에서 개인의 생명과 재산 등을 보호하고 운영하는 자유의 가치를 공적인 영역에서 관리하려는 게 민주의 가치다. 즉, 자유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은 전체주의의 길을 가지 않았고, 이런 역사가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이유가 없다”며 “역사적 기반이나 경험, 전체주의와의 경쟁으로 만든 자유와 민주가치라면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데도, 부끄러운 나라로 만드는 부정적인 역사교육이 과연 적합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보수 측 패널들의 주장에 진보 측 패널들은 산업화를 거치며 경제적 자유가 강조된 까닭에 “자유민주주의는 오염된 개념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고 맞받아쳤다.

정태욱 인하대(법학) 교수는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쓴다면 기본적인 자유·인권을 보장하는 정치적 개념과는 달리 경제적 자유주의와 기득권의 재산옹호 쪽에 치우치게 된다”며 “이는 매우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편협하게 만들어 오염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민주주의가 자유와 인권과 공존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지만 여전히 우리 현실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분들은 경제적인 자유주의에 치우쳐 있다”며 “자유주의를 포괄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가치가 포괄적이고 역사적으로도 맞다”고 주장했다.

오수창 서울대(역사학) 교수도 자유민주주의는 불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분배와 평등을 포괄하는 사회민주주의적인 가치를 배제한다면서 “자유민주주의가 사회민주주의를 포괄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민주주의는 우리가 추구하는 이념으로 합의돼 있지만, 자유민주주의는 학자들조차도 합의돼 있지 않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며 “상식적인 선에서 합의된 내용만이 교과서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중간 휴식시간 없이 3시간을 꽉 채워 진행됐다. 한국현대사학회와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그리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주최한 만큼, 팽팽한 설전이 예고됐었다.

더욱이 토론회를 앞두고 양측의 소소한 기싸움을 벌인 상태였다. 형평성을 고려해 양측의 주제 발표 분량을 A4용지 17장으로 똑같이 맞추기로 했지만, 진보 측 발제자인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 박명림 연세대(정치학) 교수가 약속된 분량을 넘긴 것이다. 이에 한국현대사학회가 반발하자, 박 교수가 분량을 줄이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이들의 논리싸움은 격앙되거나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대신 양측은 사이사이 미묘한 기싸움을 벌였다. “민주주의를 좋아하지만 국가 앞에 민주주의가 붙는 나라들은 묘하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밖에 없다”(권희영 교수)는 지적에 “민주주의를 국가 앞에 붙이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많은데 자유까지 붙이면 어떻게 되겠느냐”(오수창 교수)는 반박이 잇따랐다.

“자본주의의 시장만능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지양하자는 정신이 우리 헌법에 들어있는데,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써야 한다는 것은 희극”(박명림 교수)이라는 비판에는 “자유민주주의는 시장만능주의와 전혀 다른 개념이고, 우라 사회가 겪는 혼란을 줄이며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분명히 해야 한다”(김용직 교수)는 반론이 이어졌다.

양측은 시각의 차이를 확인한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지만, “대화를 시도한 의미있는 자리였다”며 향후 이같은 공동 토론회를 다시 개최할 것을 기약했다. [데일리안 = 변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