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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선거

정치인의 얼굴 - 전중환 진화심리학

by 아잘 2016. 7. 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052042015&code=990100&nv=stand

[전중환의 진화의 창]정치인의 얼굴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진화심리학



차기 대통령 선거가 이제 1년 반 남았다. 대권 주자들의 행보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여야 잠룡들의 얼굴을 나란히 크게 배치한 뉴스 기사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 싫든 좋든 내년 말까지는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대중매체에서 지겹도록 봐야 한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누구에게 표를 행사할지 결정할 때, 대다수 유권자는 각 후보자의 도덕성, 비전, 정치적 성향, 공약 등을 이모저모 따지고 비교해서 최적의 후보를 도출하는 일종의 오디션을 머릿속에서 성대하게 열진 않는다. 집단을 이끌 지도자로 누구를 택할지는 수백만년에 걸친 진화 역사에서 줄곧 중요한 문제였다. 네덜란드의 진화심리학자 마르크 판 퓌흐트에 따르면, 우리는 집단이 당장 봉착한 과업을 잘 해결해줄 여러 자질을 골고루 갖춘 지도자에게 저절로 순식간에 이끌리게끔 진화했다.


키, 나이, 성별, 몸집 등과 더불어, 얼굴도 그 사람이 석기시대의 지도자에게 필요했던 자질을 과연 지니고 있는지 잘 알려주는 단서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남의 얼굴 사진을 단 0.1초만 봐도 그가 지도자로서 적당한지 금세 마음을 정한다. “정치인들 얼굴만 보고 투표하지 마세요! 공약집을 꼭 따져 보세요!”라는 호소가 머쓱해지는 순간이다. 실제로 2003년 핀란드 총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을 모두 조사한 연구에서는 후보자가 잘생길수록 더 많은 표를 얻었음을 확인했다.


아주 중요한 사항이 있다. 주어진 상황과 관계없이 지도자의 특정한 얼굴형이 언제나 구성원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집단이 현재 어떠한 상황에 부닥쳤는가에 따라 구성원들이 지도자에게 바라는 얼굴은 적응적으로 달라진다. 예를 들어, 후술하는 것처럼 전쟁 시에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의 얼굴은 평화 시에 바라는 지도자의 얼굴과 다르다. 영국의 총리였던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후에 치러진 선거에선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유권자들이 지도자의 얼굴로부터 즉각 판별해내는 지도자의 자질은 어떤 것들일까?


첫째, 지도자가 유능한지를 얼굴에서 드러나는 나이로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동물계에는 나이가 들면 지식을 많이 쌓아 높은 지위에 올라서게 된다. 예컨대, 코끼리에서는 가장 나이 많은 개체가 지도자가 되어 자신만이 기억하는 물웅덩이로 무리를 이끈다. 인간에서도 나이가 든 얼굴은 그가 지식을 많이 갖춘 유능한 지도자임을 알려주는 좋은 단서가 된다.


단, 나이가 들수록 모든 종류의 지식이 다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 전통적이고 고정된 지식은 더 많아진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유연한 지식은 젊은이들보다 적다. 한 연구에서는 참여자들에게 젊은 지도자 얼굴과 나이 든 지도자 얼굴을 보여준 다음, 서로 다른 두 가지 상황에서 어떤 지도자를 더 선호하는지 질문했다. 참여자들은 경제가 불황일 때 안정을 유지할 지도자로는 나이 든 얼굴을 택했다. 친환경 기술 혁신의 시대를 선도할 지도자로는 젊은 얼굴을 택했다.


둘째, 지도자가 남을 지배하는 성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얼굴의 남성성으로 알 수 있다. 각진 얼굴형, 발달한 턱, 튀어나온 눈두덩, 얇은 눈매와 입술 등 거칠고 마초적인 얼굴을 지닌 사람은 남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처럼 지배적인 사람은, 특히 외적의 침입에 맞서 자기 집단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나 집단 내의 폭력적인 분쟁을 강제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도자로 선호되었을 것이다.


셋째, 지도자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를 얼굴의 여성성으로 알 수 있다. 갸름한 얼굴형, 작은 턱, 큰 눈, 도톰한 입술 등 상대적으로 여성적인 얼굴을 지닌 사람은 타인과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처럼 온화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특히 다른 집단과의 상호 공존이 요구되고 집단 내의 화합을 평화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상황에서 지도자로 선호되었을 것이다.


최근 수행된 어느 연구에서는 컴퓨터로 한 얼굴을 변형시켜 남성적인 얼굴과 여성적인 얼굴을 만들었다. 전쟁 중인 상황에서 둘 중 누구에게 투표할지 참여자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참여자들은 남성적인 얼굴을 지닌 지도자를 택했다. 평화로운 상황에서는 참여자들이 여성적인 얼굴을 지닌 지도자를 택했다.


요컨대, 정치인의 얼굴만 보고 투표하는 성향은 진화된 본성이니 그냥 놔두라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진화한 소규모의 수렵·채집 집단에서는 지도자 후보감의 얼굴뿐만 아니라 그의 진짜 성격, 가치관, 실제 행동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후보자를 잘 알기는커녕 한 번도 못 만난 채 투표하는 경우가 예사인 현대 산업사회에서, 유권자는 후보자의 얼굴, 키 등 외부적 단서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투표한다. 이러한 성향이 나라의 미래를 망칠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후보자의 겉모습보다는 그의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정보들을 수집해 지도자를 현명하게 택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