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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김우창 석좌교수 - 자기 생활을 충실하게 사는것이 존중되는 세상

by 아잘 2013. 8. 9.



“리더에게 중요한건 투쟁적 카리스마 아닌 도덕적 비전”

 

 

 

 

 

20대에 그는 영문학자로, 30대에 문학평론가로 살았다. 40대 이후 그는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고 아픔을 함께하는 ‘동시대인’으로 살았고, 노년의 그는 역사적 이성을 모색하는 문명의 탐색자로 살아왔다. 자신이 제시한 대로 그는 문학과 현실, 개별과 보편, 감성과 이성, 나와 이웃 간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다루면서 문학평론과 철학, 정치 사회 전 분야로 사유세계를 넓혀왔다.

김우창(74) 이화여대 석좌교수. 총선과 대선이라는 격동의 정치상황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이라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임진(壬辰)년 새해, 그에게 한국 사회가 가야 할 길을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학술원 내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교수님은 평소 인문학도 과학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과학이라면 법칙이 있어야 할 텐데 왜 예측 가능하지 않은 결론이 나오거나 엇갈린 전망이 나오는 겁니까.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인간 아니겠습니까. ‘자유의지’와 ‘필연적 한계’ 사이에서 움직이는 게 인간입니다. 이것들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어려워지죠.”

김 교수는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든 여러 선택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가 등장하기 때문에 인문학적 사고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여러 가지 시나리오와 선택들이 있는데 ‘꼭 이렇게 되겠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틀린 것이지요. 예를 들어 한국이 북한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동시에 전쟁 가능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반대쪽의 시나리오도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나리오가 하나인 것처럼 결론을 내고 함부로 전망해서 ‘꼭 이렇게 돼야 한다’는 식으로 당위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잘못을 부릅니다.”

―그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 사후, ‘김정은 시대’를 맞이해 한국은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정부와 정치 담당자들은 모든 시나리오에 대해 일정한 대비를 해야 합니다. 경중을 가려 순서를 정하고 우선순위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이렇게만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북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선은 관측해야겠구요. 여러 북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판단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사실을 넘어 우리가 원하는 평화적 관계가 성립되도록 해야겠죠. 통일이 되더라도 평화적 통일이 돼야 합니다. 그런 것을 참고하면서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평화적 통일이 우리 사회 최고의 가치인가요?

“평화통일 문제가 참으로 중요하지만, 급하게 생각해서 문제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해요. 통일을 급하게 해야만 하는 ‘당위’인 것처럼, 즉 민족적 급선무인 것처럼 얘기하는 게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기회가 와서 그런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이에 사태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너무 급한 일이라 생각하고 급하게 추구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평화롭게 자기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김 교수가 걱정하는 것은 통일이라는 과정 속에서 벌어질 ‘내적 균열’과 ‘유혈의 비용’이다. 김 교수는 독일의 통일을 떠올렸다. 한 독일 학자의 말대로 그건 통일을 향한 조용한 준비가 가져다 준 ‘역사적 우연’이었다. ‘접근을 통한 변화’ 혹은 ‘작은 발걸음의 정치’로 불릴 단계적 준비가 있었다는 것이다. 단계적 준비란 궁극적으로는 적대관계를 이웃의 관계로 바꾸는 과정이다.

“경제적으로 해마다 수십조원씩 들어가는 통일 비용을 계산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비용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경제적 비용보다도 ‘사실적 비용’을 따지는 게 더 중요합니다. 정치적 혼란에 따른 폭력 사태 같은 게 실은 더 중요한 비용이죠. 사실 조건이 무르익지 않을 때 통일이 된다 해도 북한에서 폭력적 사태나 내전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북한 내 변란 같은 걸 희망할 순 없습니다. 인간적인 희생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환영할 것이냐… 글쎄요. 수단이 지나치면 목적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목적을 보류해야 할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좋은 목적이라도 그것이 요구하는 희생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경제적인 것보다 사회정치적 우려를 먼저 생각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노동당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그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겠죠.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도 외국에서 공부했지만 개혁개방을 추진했다고 보기 어렵고요. 우리나라에도 해방 후 공산주의자들 중에 외국에서 공부 많이 한 사람 많았지만 그렇지 않았죠.”

김 교수는 미래상을 단정하는 듯한 화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회피가 아니다. 생물과 같이 살아 움직이는 변화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과정이다. 우선은 판단을 보류하면서 여러 가지로 관찰하고 다시 생각하는 것, 그래서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하고 궁극적인 가치를 이끌어내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적 본성이다.

―정치는 무엇입니까?

“정치는 ‘필요악(必要惡)’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의 이데올로기 정권을 세운 전통이 있다. 성리학과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조선을 이른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중시하다 보면 정치가 중요해지고 다른 차원의 문제들이 무시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곳도 드물죠. 전 그런 이유가 ‘자기 삶’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악이라도 ‘악’이다. 그렇다면 정치는 왜 ‘악’일까. “막스 베버가 ‘정치인은 악마와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금을 거두는 일, 군대를 동원하는 일, 이런 게 다 ‘악’이죠. 공권력이라는 독점적 폭력조직을 운용하는 일, 이런 게 모두 ‘악’ 아닙니까.”

그럼 왜 ‘필요악’인가. “그것 없이는 더 무서운 세상이 되니까 정치가 필요한 것이죠. 즉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악, 그래서 정치는 필요악입니다.”

―한국의 정치문화를 평가해 주시죠.

“다원적 가치가 더 발전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생활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존중되는 세상이 돼야겠죠. 우리는 전통적으로 ‘인정의 정치’ 기반이 너무 강합니다. 인정받고 싶어 노력하는 게 너무 강해요. 그러니 ‘자기 삶’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을 쏟죠.”

김 교수는 정치 프로그램의 재설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정치 리더들이 과거 ‘투쟁의 카리스마’를 대체하는 ‘도덕적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정치 지도력은 투쟁을 통해 획득한 카리스마에만 의존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명분을 얻기 위해 투쟁해온 사람들이 그 같은 카리스마를 만들어온 겁니다. 이젠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가 됐기 때문에 다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도덕적 비전을 제시할 줄 아는 리더십입니다.”

김 교수는 윤리와 새 정치문화를 바탕으로 한 도덕적 비전이 투쟁적 카리스마에 젖어 있는 한국 같은 사회에서 힘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걱정했다. “우리 정치는 ‘누구 죽여라’ 하는 식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모두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된다’ 하는 식의 정치문화로 발전해야 합니다. 독일 같은 선진국 국민들은 자기 대통령들이 도덕적으로 훌륭하다는 점을 먼저 생각합니다. 참 부럽더군요. 우리나라는 도덕적 문제가 없는 대통령이 없을 정도죠.”

김 교수의 말은 인간주의에 바탕한 도덕적인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이 출현해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애덤 스미스는 기본적으로 도덕철학자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게 ‘국부론’이에요. 국부론이란 책이 ‘부자 됩시다’를 주장한 게 아니란 거죠. 강요되지 않는 개인적 이익의 추구가 국가의 부를 만들어 준다는 것으로 연결되는 겁니다. 여기서 배울 수 있습니다. 국민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거기에 도덕적 비전을 부여하는 것, 그게 정치의 임무이고 역할입니다. 정치 리더들은 정당의 정강정책 속에서 인간주의에 바탕한 도덕적 비전을 보여줘야 합니다.”

김 교수는 기존의 한국 정당들 가운데 이런 도덕적 비전과 정책을 보여주는 정당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네거티브와 공격을 주요 무기로 삼는 정치과정에서 희망을 논할 틈이 없는 겁니다. (정치인들과 기존 정당들이) 너무 짧게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 정치 현실을 볼 때 정치가 합리적이고 책임 있는 해결책을 말해주기에는 심히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안철수 현상’이란 것도 결국은 도덕적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없는 현실에서 느끼는 피로감과 회의감이 불러온 것일 텐데….”

―우리 정치는 아직도 보수와 진보 간의 쟁투, 좌우 투쟁의 범주 안에서 놀고 있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중요한 것은 좌우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 차이, 도덕적 차이를 분간해 내는 겁니다. 우리 정치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쪽에서 추진하면 일단 비판하죠. 우리 전통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예의인데, 맨날 주먹다짐 하는 걸 정치투쟁이라 생각하고 그걸로 정치이념이 분명해지고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정말로 유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좌우 정치 그룹이 갖는 장점은 없습니까.

“사회정책적인 프로그램을 분명하게 내세우는 건 아무래도 좌쪽인 것 같습니다. 복지, 통일 등 분야에서 그렇죠. 그게 옳고 글렀고를 따지기 이전에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우측입니다. 경제성장이라든지, 일자리 창출 같은 것…. 우측이 현실 생활에 더 밀착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게 중요한데 이런 건 우쪽에서 더 일을 잘 한다고 느끼게 해주죠.”

―좌우로 쪼개진 한국 정치가 어떻게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 정치는 학생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인상을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런 쪽으로 계속 간다면 정치적 안정성이 기대되기는 힘들겠죠. 의견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정책이 시행될 때 불가피하게 갈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우리 전통은 그게 참 안 됩니다. 앞으론 정책적 차원이 중요합니다.”

김 교수는 이 과정에서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좀 더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지식인 계층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제 아래에서 말했다. “좌는 ‘사회’와 ‘정의’에 무게를 두고 우는 ‘민주’와 ‘성장’에 역점을 두니까 이 둘이 결합하는 게 좋겠죠. 둘이 만나 민생 위주의 정책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는 데 중요한 것은, 더 길고 더 깊게 전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중립적 지식인의 역할입니다. 언론매체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를 이성적 토론을 통해서 통합이 되도록 역할을 해야 합니다.”

―새해는 정치의 해입니다. 총선이 있고 대선도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이 나오고 어떤 대통령이 나와야 할까요?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일시적 이슈를 갖고 투쟁을 벌여 정치적 지위를 확립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을 더 믿고 성실하게 나라를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하고 그렇게 하면 결국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게 있다 하는 입장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야겠죠.”

김 교수는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에 대한 고뇌도 털어놨다. “지금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대안이 되지 않는다는 건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장경제체제는 여전히 인류가 만든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경제체제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도덕적 호소’입니다.”

김 교수는 우리 정부가 전 세계를 향해 ‘기업윤리헌장’을 제정하자고 호소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런 게 만들어지면 기업 입장에선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국제사회의 국가들과 기업들이 더 책임있게 경영을 하고 행동하면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자료 : 문화일보(인터뷰 = 허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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