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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맥주

국산맥주의 맥아함유량

by 아잘 2014. 2. 18.

 

조선일보

http://food.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08/2013010801803.html?Dep0=chosunnews&Dep1=related&Dep2=related_all

‘물 맥주’ 소리 듣는 국산 맥주의 숨겨진 진실

입력 : 2013.01.09 09:00

미국 라거 방식 ‘하면제조법’ 생산으로 밍밍함 불가피
해외 맥주 먹어본 소비자들 눈높이 높아져 국산 품질에 불만

“한국산 맥주인 카스와 하이트는 목 넘김은 좋지만 미각을 자극할 정도는 아니다.(중략) 오히려 영국에서 수입된 장비로 만드는 북한 대동강맥주 맛이 놀라울 정도로 좋다.” 지난 2012년 11월24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맥주산업에 대한 분석 기사를 내면서 국산 맥주 맛에 대해 이렇게 혹평했다.

비록 온라인 판에 실린 기사였지만 후폭풍은 상당했다. 정말로 우리 맥주 맛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국산 맥주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살펴봤다.

	‘물 맥주’ 소리 듣는 국산 맥주의 숨겨진 진실

서울발 <이코노미스트>지 기사 ‘화끈한 음식, 지루한 맥주’(Fiery food, Boring beer)는 보도 이후 국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담겨진 내용도 국내 맥주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기사 내용을 좀더 살펴보자.

“마늘과 고추에 절여진 김치나 접시 위에서 꿈틀거리는 산낙지 등 흥미 넘치는 한국 음식들과 달리 맥주는 심심하다. 한국 맥주는 주재료인 맥아(보리에 싹을 틔운 것)를 아끼고 대신 쌀이나 옥수수를 많이 사용해 술을 만든다. 또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의 시장 점유율이 100%에 달하는 것도 한국 맥주산업의 문제다.”

<이코노미스트> 지적을 요약하면 국산 맥주 시장이 사실상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등 양강체제여서 다양한 맛의 맥주가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낮은 품질이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정말 국산 맥주의 품질은 낮은 것일까.

해외 여행객 증가로 미국·유럽맥주 경험 늘어나

국산 맥주 맛과 관련해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해외 여행객 증가로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해외 맥주를 먹어본 사람들이 늘면서 국산 맥주 품질에 대한 불만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이코노미스트>가 제기한 문제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이에 따른 반대급부로 프리미엄급으로 분류되는 수입 맥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지난 2012년 10월 관세청이 발표한 ‘주요 주류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2012년 맥주수입량은 전년에 비해 23%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종류도 다양해져 현재 국내 수입되는 해외 맥주 수는 약 480여종에 달한다.

그렇다면 국산 맥주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이유는 왜일까. 맥주 애호가들이 국산 맥주와 관련해 유명 주류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에 올리는 글의 요지는 한마디로 “맛이 없다”는 것이다. 유럽,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에서 생산되는 맥주에 비해 맛의 무게감이 덜하며 맥주 본연의 쓴 맛과 마신 뒤 느껴지는 청량감이 떨어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다보니 맛에 대한 불신은 원재료 함유량과 품질, 설비 등 양조 전 과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맥주는 주원료인 맥아를 이용해 만든다. 보리에 물을 공급해 싹을 틔운 뒤 더 이상의 발아를 막은 채 뿌리를 자른 것이 맥아다. 맥아 비율이 높으면 맥주색은 진한 갈색 빛에 가까워지고 맛은 씁쓸하다. 정통 유럽식 맥주가 대체로 이런 맛에 가깝다. 그러나 유럽식 맥주는 목 넘김이 부드럽지 않다. 때문에 미국, 유럽 등 대형 맥주 회사들은 맥아에 옥수수, 쌀, 밀 등을 섞어 구수하면서 부드러운 맛을 내도록 한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맥아 함유량은 업체마다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지만 세금과 직결된 만큼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은 정해 놓고 있다. 가령 유럽 맥주 본고장 독일은 1516년 남부 바이에른공화국의 빌헬름 4세가 법으로 공표한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을 지금도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맥주순수령에 따르면 독일맥주는 맥아, 홉, 효모, 물 이외에는 다른 어떤 첨가물을 넣어선 안 된다. 일본은 주세법에 따라 맥아 비율이 66.7%가 넘어야 하며 그 기준에 못 미치면 발포주(탄산이 함유된 저 알코올 음료) 내지는 비 알코올성 음료로 분류된다. 네덜란드 하이네켄도 맥아 함유량이 100%이며 미국 버드와이저는 70~80% 수준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주세법에 따라 맥아 함유량이 10%만 넘으면 맥주로 인정받는다. 기준이 느슨하다 보니 대형 맥주회사들이 원가를 아끼려고 맥아를 적게 넣어 맥주 맛이 물처럼 밍밍한 것이라는 주장이 그래서 생기고 있는 것이다.

맥주 제조업체들은 이 같은 네티즌들의 주장에 대해 맥아 함유량은 일반 수입 맥주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항변한다. 업체들이 말하는 국산 맥아 함유량은 60~70% 정도다. 하이트진로에서 만드는 맥스와 OB맥주의 골든라거는 맥아 함유량이 유럽맥주와 같은 100%다. 변형섭 OB맥주 홍보팀 이사는 “맥아 함유량을 60~70%로 유지하는 이유는 국내 소비자들이 진한 맛의 유럽 스타일보다는 부드러운 맛의 미국 스타일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변 이사는 “우리나라 주세법의 맥아 비율은 수입맥주에 대한 과세목적에 따라 설정된 기준이지 이를 실제 맥아 함량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관련 업체들은 법으로 맥아 비율을 높여놓으면 세금을 적게 내도 되는 ‘저(低)맥아’ 수입 맥주들이 범람할 수 있기 때문에 과세당국이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1. 많은 사람들이 소주와 섞어 먹다 보니 가벼운 라거 방식의 맥주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2. 맥주 양조에 사용되는 홉(Hop).
1. 많은 사람들이 소주와 섞어 먹다 보니 가벼운 라거 방식의 맥주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2. 맥주 양조에 사용되는 홉(Hop).

세금문제로 10%만 맥아 넣으면 맥주로 인정

또 거의 모든 국산 맥주들이 효모를 맥주통 아래에서 발효시키는 하면발효법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물 맥주’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라거(Lager) 방식인 하면발효법은 맥주 맛이 깔끔하고 청량감이 있다. 미국 버드와이저가 라거 방식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맥주다. 네덜란드 하이네켄도 같은 방식으로 양조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프리미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유럽 프리미엄 중에는 효모를 맥주통 위에서 발효시키는 상면발효법 맥주가 상당수다. 상면발효법으로 만든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고 맛이 강하다. 유럽맥주는 상당수가 이 같은 에일(Ale)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코노미스트>가 국산 맥주보다 맛이 더 좋다고 평가한 북한 대동강맥주도 에일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염행철 한국양조과학회 회장은 “1~2잔을 즐기는 외국인들과 달리 국내 소비자들은 소주나 양주 등과 섞어 대량으로 즐길뿐더러 여름철 더운 날 갈증 해소용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는 것도 맥주회사들이 부드럽게 맥주를 만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이트맥주 전신인 조선맥주가 과거 씁쓸한 맛의 크라운맥주로 고전하다 깨끗한 물과 시원함을 강조한 하이트를 내세운 뒤 맥주시장 판도를 뒤바꾼 것도 순전히 국내 소비자들의 기호 탓이다. 일본, 유럽 맥주들이 쓴 맛이 강한 유럽산 홉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국내 업체들이 쓴맛이 덜한 미국산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맥주 양조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맥주 제조업체들은 프리미엄맥주인 버드와이저·호가든 등이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을 예로 들며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맥주업체 관계자는 “OB가 만드는 호가든을 가리켜 ‘오가든’이라고 폄하할 정도로 국내 소비자들의 불신은 높다”면서 “하지만 정작 유럽 바이어나 호가든 본사 관계자들은 국내에서 생산된 호가든 맛이 벨기에 본사 것과 전혀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주류 업체들의 주장에도 물 맥주에 대한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채택한 맥주공법인 하이그래비티 공법에 대해서까지 의혹을 제기하는 모습이다. 하이그래비티 공법(High Gravity Brewing)이란 맥아즙을 몇 배로 만들어 고 알코올로 발효시킨 뒤 여과 과정에서 탄산수를 섞어 알코올 도수를 4~5% 수준으로 낮추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맥주를 만들면 양조 과정에 필요한 열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가격경쟁력 면에서 도움이 된다. 그런 이유로 하이그래비티 공법은 비단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 대형 맥주회사들도 즐겨 사용하고 있다. 한꺼번에 대량 생산할 수 있어 생산비용이 오리지널그래비티 방식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독일에서 맥주 양조학을 공부한 한 전문가는 “해외 업체들의 하이그래비티 공법이 맥아에 물을 넣고 발효를 시켜 알코올 도수를 맞추는 방식이라면 우리는 이미 발효된 원액에 탄산수를 섞는 그야말로 물 타기 방식이며 탄산수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톡 쏘는 맛도 강하다”고 설명했다.

	1. 하이트진로의 맥스는 맥아를 100% 사용해 유럽스타일로 만들지만 시장 점유율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2. 단일 브랜드로는 국내 최다 판매량을 기록 중인 카스.  3. OB맥주 광주공장에서 생산되는 벨기에식 밀맥주 호가든.
1. 하이트진로의 맥스는 맥아를 100% 사용해 유럽스타일로 만들지만 시장 점유율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2. 단일 브랜드로는 국내 최다 판매량을 기록 중인 카스. 3. OB맥주 광주공장에서 생산되는 벨기에식 밀맥주 호가든.

국내 하이그래비티 공법에도 의혹 제기

더 근본적으로 이런 의혹이 계속되는 이유는 맥주의 경우 성분표시의무제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맥아, 홉, 첨가물 등의 사용량이 공개되지 않다 보니 소비자들의 불신만 커지고 있다. 가령 카스만 해도 성분 함유량을 수입산 맥아 79%, 국내산 맥아 21%로 수입산과 국산의 맥아비율만 공개한다. 때문에 전체 재료성분은 알 수 없다. 물론 주류 업체들은 여전히 “구체적인 제조 레시피는 기업 고유의 노하우”라면서 공개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북한 대동강맥주만 해도 병 레이블에 ‘맥아 70%, 쌀 30%, 홉’이라고 성분을 표시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함유량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서 무조건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홈 메이드 브로잉 동호회인 인터넷 카페 ‘맥주만들기’의 한 회원은 “최근 홈 메이드 브로잉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몇몇 대형 업체들이 레시피를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공개 필요성을 주장했다.

가격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2001년 개정된 주세법에 따르면 현재 맥주 주세는 72%다. 출고원가가 500원인 맥주에 붙는 세금(500원×72%)은 360원이다. 여기에 30%인 교육세는 108원, 부가세(출고가+주세+교육세×10%)는 92.8원이다. 결국 원가가 500원인 맥주 한 병이 주류 도매상에서 넘어갈 때 판매되는 가격은 1060.8원이 된다. 현행 과세기준을 감안할 때 최고급 재료를 사용할 경우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가격은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산 프리미엄급 맥주가 시장점유율을 높이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태용 농촌진흥청 연구관은 “국내 주류 메이커들이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것도 세금까지를 포함한 최종 소비자가격을 고려한 것이지 기술, 설비 수준은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외신이 지적한 바와 같이 지금처럼 하이트진로, OB맥주만이 라거 방식으로 맥주를 만드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급격한 품질 향상을 기대하기란 힘들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다만 롯데 주류가 맥주 양조를 검토하고 있고 세븐브로이가 에일 방식으로 맥주를 생산해 국내에서 시판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제3, 제4의 맥주 메이커가 다양한 방식으로 맥주를 내놓아야 천편일률적인 국내 맥주시장이 바뀔 수 있다.

김교주 세븐브로이맥주 이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에일 방식으로 맥주를 생산하고 있는데 일반 소비자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뜨겁다”고 말해다. 김 이사는 그러면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얘기처럼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이 바뀌지 않는 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도 다양한 방식의 맥주가 출시돼 수입맥주와 경쟁을 벌이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Tip  |  북한이 자랑하는 대동강맥주

영국 설비·독일 재료 합작품… 정통 에일 방식 맥주

	1. 북한이 이례적으로 제작해 내보낸 대동강맥주 TV광고.  2. 북한 최고급 맥주라는 평가를 받는 대동강맥주 생산시설.
1. 북한이 이례적으로 제작해 내보낸 대동강맥주 TV광고. 2. 북한 최고급 맥주라는 평가를 받는 대동강맥주 생산시설.
<이코노미스트>가 우리나라 맥주보다 맛이 좋다고 평가한 대동강맥주는 북한이 자랑하는 주요 수출품 중 하나다. 현재 북한에서 생산되고 있는 맥주는 평양맥주, 금강맥주, 용성맥주, 대동강맥주 등 총 4가지다. 이 중 가장 품질이 좋다고 평가받는 맥주가 대동강맥주다. 대동강맥주는 북한의 평양시 사동구역 송화동에 위치한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대동강맥주는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의 맥주를 만들라”고 지시해 개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2002~2004년 영국에서 맥주 양조학을 공부한 염행철 한국양조과학회 회장은 “기계는 영국산이지만 양조 기술은 독일 방식으로, 당시 관련 업계에서는 ‘경제상황이 좋지 못한 북한이 과연 설비를 수입할 수 있겠느냐’가 화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들여온 맥주시설은 지난 1999년 폐업한 영국 어셔 트로브리지 맥주회사의 설비들이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지시로 지난 2000년 150만파운드를 주고 이 설비를 들여왔다.

현재 대동강맥주는 에일(상면발효)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맥아, 홉 모두 독일산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강하 한국마이크브루어리협회 강사는 “국산 맥주보다 색이 진하고 맥주 본연의 보리향이 강하며 마시고 난 뒤 씁쓸한 여운이 길다”고 말했다. 대동강맥주는 지난 2011년까지 국내 수입되다 천안함 사태 이후 발표된 5·24조치로 국내 수입이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까지 대동강맥주를 국내 수입, 유통한 이명재 동우와인 대표는 “5·24조치 전까지만 해도 시장 수요를 맞추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면서 “제품 대다수가 북한 내 판매돼 물량 확보가 힘들지만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수입을 재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맥주업계 관계자는 “기사를 쓴 <이코노미스트> 기자가 유럽스타일 맥주에 입맛이 길들여져 영국 설비로 만들어진 대동강맥주을 높게 평가했을 수도 있다”면서 “주관적인 판단이라 별다른 대응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밝혔다.

/ 이코노미조선
  송창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