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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칼럼

광장, 한상균, 그리고 백남기 - 박원호

by 아잘 2016. 7. 6.
경향신문

[정동칼럼]광장, 한상균, 그리고 백남기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052035015&code=990308&nv=stand




광장은 휴식이며 햇볕이다. 휴일날 아이들 손을 잡고 광장을 걸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내 일상의 번잡함을 잊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낯선 타인들을 구경하는 것이며, 마음속 밀실의 음습함을 소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광장에 나와 햇볕을 쏘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익명의 이웃들은 나와 같은 솜사탕을 들고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광장을 조용히 읊조리듯 순례한다.


그러나 광장은 널찍한 주인 없는 빈터이며, 여러 갈래 길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때로는 소음 같은 현수막과 스피커가 어디선가 벌어지는 논쟁과 다툼을 알리며 시선을 끌려 한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고 아무도 관심 없지만, 누가 무슨 이야기를 소리 높여 외치고 왜 사람들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지 궁금함에 발길이 모이기도 하는 곳이 광장이다. 때로는 틀린 소리도 들릴 것이고, 때로는 듣기 싫은 이야기를 누군가가 지겹게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장은 바다이며 바다는 깨끗함과 더러움을 가리지 않는다(大海不棄淸濁). 듣기 싫다면 돌아서면 그만일 따름이다.


광장이, 즉 ‘아고라(Agora)’가, 그리스 시민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동체와 연대의식을 느끼게 해줄 이름 모를 이웃들이 노닐고, 정치를 이야기할 여유 시간이 있으며, 수많은 의견과 생생한 목소리들이 넘쳐나는 광장은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산실이었을 것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운명적으로 만난 곳도 아고라였고, 디오게네스가 정직한 사람-혹은 ‘사람’-을 찾기 위해 등불을 들고 배회한 곳 또한 광장이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 또한 광장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1987년의 뜨거웠던 여름은 시청 앞과 광화문에서 시작되었으며 5·18의 전남도청 앞 광장이 있었다면 4·19의 서막을 알린 대구 동성로 광장 또한 있었다. 광장을 부정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며, 광장을 차단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차단하는 것이다. 굳이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2011년 헌법재판소가 서울광장 차벽 봉쇄를 위헌 결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광장은 사그라지고 있다. 경찰이 콩기름 바른 버스로 차단하고 밧줄로 얽어맨 순간부터 우리의 광장은 닫힌 광장이 되었으며, 경찰이 지난해 11월 집회에 참여 중이던 백남기 농민의 가슴에 물대포를 직사하고 쓰러진 그 육신에 다시 캡사이신이 섞인 차가운 물세례를 뿜어대던 날 우리의 광장은 얼어붙었다. 과잉진압의 책임자들이 조사를 받거나 책임지기는커녕 한 달 만에 승진의 소식이 들리던 날 광장은 시민들의 것이 아님이 너무도 분명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집회 등을 주최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것은 광장에 대한 국가의 마지막 폐쇄 절차인 듯하다. 한상균 위원장에게 1987년 이래 집회시위법 관련 사안으로는 최고 양형인 징역 5년을 선고한 것은 아무리 보아도 미래에 광장으로 들어오려 하는 이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이 광장은 시민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라는 경고.


물론 이곳에서 내가 폭력시위를 옹호하고 광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국가는 눈 감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직접적인 폭력행사자들을 찾아내고 처벌하면 될 일이다. 경찰이 광장을 가두고 물대포를 쏘는 과정에서 폭력의 상호 상승작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며, 경찰이든 시위대든 폭력을 직접 행사한 당사자들이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폭력진압의 책임자들은 승진하고 집회 주최자인 한상균 위원장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일은 앞으로 광장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에 대한 잠재적인 책임을 그 주최자-신고자-에게 묻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행위에 대한 처벌이야말로 법의 정신이 아니었던가? 집회 주최자들을 미리 주눅들게 하고 광장을 차단하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병들어 가고 있다.


텅 빈 광장 위로 잊혀진 것들이 두 가지 있다. 하나, 광장에서 사람들이 말하려 하고 들으려고 모였던 내용이 정작 무엇이었는지를 우리는 기억하는가? 폭력시위와 그 처벌에 대한 논란 속에서 정작 광장에서 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서 솜사탕이 아닌 촛불과 피켓을 들었는지는 잊혀지고 있다. 둘, 시위 진압 과정에서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고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하는가? 우리 광장의 회복, 민주주의의 회복과 함께 백남기 농민의 회복을 가슴 저리게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