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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철학자 한병철(54)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 교수 |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 ‘피로사회’ 한국어판 출간 방한
‘더 많이 일하면 더 높은 성과를 인정받고 더 많은 보상을 얻는다.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거나 시키는 사람도 없건만 나는 나의 자유의지로 죽도록 일하고, 그 결과로 죽을만큼 피로해진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과연 주인인가, 노예인가?’2010년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로 규정하는 독창적 화두를 던져 유럽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재독 철학자 한병철(54·사진)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 교수가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펴냄) 한국어판 발간에 맞춰 잠시 귀국했다.
고려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철학 공부를 시작한 한 교수는 현재 독일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꼽힌다. <피로사회>는 철학서적으로는 드물게 독일에서만 2~3만부 가량 팔렸으며, 독일 권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에서는 그의 철학적 업적을 집중 조명하는 특집 기사를 싣기도 했다.
독일서 주목받는 비판지식인
“뭐든 할 수 있다는 긍정과잉
생산성 집착하는 노예 만들어”
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교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영악함은 생산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 자기 스스로를 착취하게 만들었다”며 “‘뭐든 할 수 있다’ 등 긍정의 과잉이 지금 시대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교수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21세기의 사회가 기존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규율사회란 자아와 타자가 부정성을 중심으로 변증법적 관계를 맺는 시대다. 단적으로 말해 ‘(무엇을) 해서는 안된다, 해야 한다’ 등을 내세워 타인을 착취하던 시대다. 그러나 주인이 죽으면 노예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이런 부정성은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그러나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부정성을 긍정성으로 대체하면, 사람들은 ‘뭐든 할 수 있다’는 가치에 사로잡혀 자기 스스로를 착취하게 된다. 사람들이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스스로를 착취하는 것이 바로 성과사회이며, 이는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진화한 현상이다. 우울증·성격장애 등 신경성 질환들은 그 결과물이다.
한 교수는 무엇보다도 규율사회의 규정에 발묶인 서구 중심의 지적 흐름이 이렇듯 변화한 성과사회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변화를 인식해야 비로소 규율사회와 성과사회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문이 열립니다.”
그는 “성과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유산, 곧 나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타자’의 존재,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이 아니라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정성 등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폭력의 위상학>·<시간의 향기>·<투명사회> 등 자신의 다른 저작들을 소개하고, “독일 사회와 큰 차이가 없는 한국 사회에서도 많이 읽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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