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603041455551&code=920100&med=khan
외교의 시대···“한반도 통일, 주변 4국의 손익계산을 바꿔라”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입력 : 2016-03-04 14:55:55ㅣ수정 : 2016-03-04 17:24:15
-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그간 쌓아온 경제력에 근거해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린다) 전략에서 공세적 외교로 전환한 중국과 아시아 지역에서의 패권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영토분쟁이 얽힌 남중국해와 통일 문제가 걸린 한반도는 미·중 패권 다툼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협력과 경쟁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미·중 갈등에 더해 일본은 군사대국화에 이어 역사 수정주의를 추구하고 있고, 북한 김정은 체제 역시 핵무장으로 안보를 보장받으려는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미·중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어 주변국들이 양국을 중심으로 진영을 형성할 경우 통일 한국이 어느 세력에 속할지는 모두에게 중요한 변수가 된다. 따라서 주변국들은 위험 부담이 있는 한반도 통일보다 오히려 현상유지를 희망할 수 있다. 통일에 있어 국제적 차원의 ‘원심력’이 커진 상황이라는 뜻이다.
내심에서 주변국들이 분단 상황을 더 선호하는 흐름이 형성되는 것과 함께 대내적으로는 통일에 대한 ‘구심력’이 약해지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 관계는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고 통일 정책을 두고 남남갈등 역시 어느 때보다 크다. 통일을 위한 남북 협력의 구심력을 잃지 않으면서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는 미중 갈등 구도를 완화시키려는 외교적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65·전 외교통상부 장관)가 최근 펴낸 <외교의 시대>(미지북스)는 앞서 언급한 통일에 대한 원심력과 구심력의 요소들을 검토하면서 한반도 주변국들의 전략과 이에 대응한 우리의 통일, 외교 정책을 밝히고 있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가 1월6일 교내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그가 생각하는 통일을 위한 대외 전략의 핵심은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 4국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한반도 통일에 따른 그들의 손익계산을 바꿔 통일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원심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통일을 향한 대내적 구심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통일 정책에 대한 여야 간의 초당적 단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정당인 독일 기민당의 헬무트 콜(재임 1982년~1998년)이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 독일 통일을 이뤄낸 점을 예로 들면서 우리 정치도 일관된 대북 정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특히 기존의 대북 정책이 북핵 문제나 북한 정권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보통의 ‘사람’ 간의 만남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봤다. 그 방안은 의료·환경 등 정치적 이견이 적은 분야에서 협력을 적극 추진해 북핵 문제나 정권 교체에 따른 협력의 불안정성을 줄이는 것이다. 이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면서 남북 주민 간의 접촉면을 늘려 남북 협력의 강력한 구심력이 될 수 있다.
아래는 경향신문이 지난달 29일 진행한 윤 전 장관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그는 이날 25년간 국제정치경제학을 가르쳤던 서울대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그는 퇴임 이후 계획을 묻자 “갈수록 꼬여가는 한반도 문제를 계속 부둥켜안고 지낼 것 같다”며 “2학기 때는 학부 강의를 한 과목 해야 하는데 청년들과 교류하면서 같이 고민하는 생활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의 진보·보수의 분열이 심하고 통일에 대한 접근법이 크게 다른 상황에서 통일을 향한 구심점을 키울 수 방안은 무엇인가?
=헬무트 콜이 1982년 집권하면서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자기네 정책으로 받아들여 통일 때까지 이어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2013년 베를린에서 6개월간 머무르는 동안 정치인들에게 물어봤더니 보수 정당의 지도자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네 나라들이 기본적으로 분단 관리에만 주로 관심이 있지 현상 변경이나 통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결국 독일 문제는 독일 사람들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동방정책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대범하게 당의 입장을 바꾸고 초당적으로 상대방의 정책까지 받아들이는 정치 문화가 굉장히 부러웠다. 이런 정치문화가 아직 조성되지 않은 한국이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우선 첫째는 북한 문제를 그동안 너무 체제 문제에 중점을 둬서 접근을 했다. 이제는 초점을 사람에 모아야 할 때다. 북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도울 것이냐, 여기에 초점을 모아 대북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한국 정치 내에서 진보, 보수의 분열상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핵심 정신인 인간의 존엄성에 천착해서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는 그 당연하고 중요한 기본을 이제까지 냉전 대결 과정 속에서 잃어버렸다.
두 번째로 아직은 대결구도가 심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덜 민감한 분야에서, 북한 주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분야부터 남북 간의 협력을 시작해야 한다. 의료, 환경 분야의 협력을 그래서 주장했던 것이다. 남북한 간 구심력의 끈이 하나하나 연결되고, 구심력이 강화되면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작동하는 원심력을 언젠가는 압도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세 번째,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이 이런 방향으로 유도해주면서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해주고 양 극단의 의견들을 서로 수렴시켜주면서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현재는 언론이 정치 세력 또는 정치 진영의 어느 한 편에 서서 정치적 양극화를 증폭시키는 부분이 더 큰 것 같다. 언론이 시각을 바꾸면 국민들의 시각도 좌우가 수렴하면서 통일을 향한 구심력이 강해지고 일관된 통일 철학과 통일 전략이 나올 것이다.
-미국은 세계 경제 위기의 중국 책임론을 들고 있는데 오히려 위기의 책임은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로 금융시장 불안정을 세계로 전파한 미국에 있는 것 아닌가?
=2008년 경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세계 경제의 거시적 불균형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와 민간의 과잉소비와 금융 부분의 규제완화, 시장만능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중첩되면서 생긴 버블이 꺼지자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다. 요즘 와서는 양적완화로 풀린 돈을 회수하기 위해 금리를 올렸는데 이것이 브릭스 국가를 비롯한 신흥국 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게 하는 문제를 일으켰다.
세계 경제는 연결되어 있는데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시각은 대단히 근대 국가적이고 국가 중심적이다. 미국은 미국 경제 하나만 보고 그런 정책을 펴는데 그 여파는 전 세계적으로 미친다. 경제는 세계화되었는데 정책 결정은 국가 단위로 이뤄지는 데서 생기는 딜레마다.
미국에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2008년까지 지나친 수출주도 발전 전략을 추진했고 또 과잉저축 전략을 추진했다. 세계 경제의 거시 불균형을 초래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중국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중·러와 함께 북한에 대한 공동 경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남·북 이외의 경협 참가자를 늘리는 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는지?
=첫 번째로 한국이 아닌 중국과 러시아 또는 일본 등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 이들 제3 국이 남북의 정치적인 또는 군사적인 대치로 인해서 파생되는 부정적 효과를 완충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경제적인 교류나 거래가 객관적인 시장 원리 또는 원칙에 따라서 좀 더 합리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나 일본이나 중국의 기업가들이 정치적 변수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경제 거래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만 해도 북·중간의 경제 협력은 중국의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시장 원리에 따라 진행되는 측면이 강하다. 시장 원칙에 입각한 경제 협력이 이뤄지면 이것이 북한 당국에 주는 교육적 효과도 크다고 본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 이후 남북 경협은 어떤 방식으로 재개될 것으로 보는지?
=지금은 개성공단이 폐쇄됐을 뿐만 아니라 소통 채널도 없고 적대적 상황까지 나아갔다. 이 상황에서는 남북 관계에서 상당한 질적 변화가 오기 전에는 본격적인 남북 경협은 힘들겠다는 생각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남북 경협의 미래가 우리 손을 떠나서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손에 달려있다는 기분이 자꾸 든다. 설령 경협이 재개가 되더라도 그때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전개되는 한반도 상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첫째, 유엔 안보리 제재는 이전에 비해서 상당한 수준으로 강도가 높아질 것이다. 여기서 중국이 얼마만큼 지속적으로 강도 높은 제재를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변수다. 그다음 중국이 미국과 함께 북한이 상당히 아프게 느낄만한 제재를 한다면 여기에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고 나올 것인가가 변수다. 핵 문제, 미사일 문제에 대해 전향적 조치를 취할 의지를 표명하면서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인지 아니면 또 도발을 하고 나올 것인지 두 가능성이 있다.
둘째, 내가 알기로 미국의 의도는 북한을 압박해 붕괴시키겠다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최대한 강도 높게 제재를 하고 그 결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끔 끌어내 비핵화와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서 적극적인 전향 조치를 취하게 하는 게 궁극 목표다. 만약 그런 상황이 전개돼서 미·북간의 진지한 협상이 진행된다면 한반도 정세도 안정이 될 수 있다. 그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한국 정부의 입지는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 개성공단과 같은 프로젝트를 재개하는 것은 바로 그 시점에 도달한 이후의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북한 핵실험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가?
=미국과 북한이 4차 핵실험 전에 대화를 시도를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북한 측에서 미국이 제기한 비핵화 문제를 의제에서 제외하면서 무산됐다. 그런 상황에서 4차 핵실험을 한 것은 핵무기 개발 기술을 발전·소형화시켜 위력을 강화한 다음 장거리 미사일에 탑재해 미국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수준에 올려놓고 미국과 협상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타이밍이 문제일 뿐 아마 핵실험은 지속될 걸로 본다. 미국과 국제 사회가 주도해서 유엔 안보리 제재를 강화했을 때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책 중의 하나가 핵실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또 핵실험을 할 경우 더 할만한 제제가 있을까?
=그게 딜레마다. 완전히 교착 상태에 빠져서 힘든 상황에 있다. 서방 측 특히 미국 측에서는 지금 방법이 없는 상황이고 게다가 지금 미국 대선 국면이다. 이 때문에 북한 쪽에서는 아마도 현 오바마 정부하고는 대화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다음 정부가 어떤 정부가 될 것이냐, 새 정부의 대북 정책 리뷰가 끝나는 시점이 언제쯤 될 것이냐를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지?
=사드 문제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존재하는 한 미군이 오산이 됐든 군산이 됐든 자군의 기지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자국 비용을 들여 들여오는 건 막기 힘들 거라고 본다. 우리 돈으로 구매를 해서 들여오는 건 별개의 문제다. 이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중국 설득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드에 대해 중국이 문제 삼는 ‘X밴드 레이더’의 중국 쪽 커버 문제는 북한을 목표로 해서 기술적으로 설정되어 있고 이미 중국 지역 내부는 수많은 인공위성뿐만 아니라 괌이나 일본에 배치된 레이더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 중국이 이 레이더가 그렇게 추가적인 엄청난 어려움이나 위협을 주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사드 도입의 명분이 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해서 중국이 과연 얼마만큼 실질적으로 노력을 해줬는가의 측면이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한미동맹의 타깃이 중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걸 중국이 믿게 해주는 것이다. 중국은 임진왜란부터 시작해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 등 과거 수백 년 전부터 한반도가 해양세력과 연합해서 자국을 포위하는 것에 대한 지정학적인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사실 가장 바람직한데 현실화되기 어려워진 그런 상황이 오늘날 사드 문제에 중첩되어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 여권 일각에서 제기한 핵무장론은 어떻게 봐야 하나?
=핵무장은 기본적으로 비용이 편익보다 훨씬 큰 선택이 될 것이다. 일단 핵무장을 한다는 건 미국의 ‘확장 억제’ 그러니까 한국을 보호해주겠다는 동맹으로서의 약속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행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내세우는 비핵화,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내세운 ‘핵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라는 대외정책의 근간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라 한미동맹에 엄청난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미동맹이 흔들릴 때 과연 한국의 통일 문제나 한국의 방위 문제와 관련해서 얼마만큼 진지한 협력이 가능할 것인가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해왔던 한국의 도덕적인 정당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 핵무장을 시도한 경우 한국도 유엔의 경제 제재 대상이 될 텐데 수출 주도로 먹고사는 우리 입장에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한미동맹이 방어적 성격이라는 점을 들어 중국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 동아시아 질서가 유럽처럼 다자안보협력체제나 집단안보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어서 큰 나라의 무력행사에 대해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중립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에도 지금과 같이 동북아 국가들 간에 긴장하고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현재의 국제 질서가 그대로 지속되는데 통일이 됐지만 상대적으로 소국인 한국이 아무런 안보 보장 장치를 갖지 않은 채 존재한다는 것은 국제정치 현실을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결과라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안보적인 공백을 벗어나는 길은 뭔가. 첫째 선택은 핵무장이다. 우리가 핵을 가지고 있어서 최소한 주변 국가들이 안보적 차원에서 위협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그건 가능하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핵을 가진다고 하면 주변 어느 나라도 통일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마저도 한반도가 통일되는 걸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통일을 희망한다면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비핵화다. 주변국들이 한결같이 그걸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거스르면서 협조해라 하면서 통일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통일 과정에서든 이후든 비핵화를 천명할 수밖에 없다면 유일하게 남아있는 안전보장 장치는 한미동맹이다. 멀리 떨어진 그래서 한반도에 대해서 영토적인 문제와 관련해 야심이 없고 분쟁이 없는 그런 국가를 동맹으로 끼고 있는 것은 안보공백의 문제를 해소해 줄 수 있는 장치가 된다고 본다. 단 조건은 중국은 항상 한반도가 해양세력과 연합해 자기를 포위하는 국가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력이 동북아에 투사되는 공격적 동맹 시스템이 아니라 한반도에 무력 분쟁이 터졌을 때 이를 억제하는 것에 주목적이 있는 방어적 시스템으로서의 한미동맹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런 정신에 따라서 주한미군의 문제를 중국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재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모색하는 것이 바로 통일외교의 중요한 목표가 될 것이다.
-북핵 문제의 엇갈림을 보면 민주주의 국가의 잦은 권력 교체가 북한 문제를 악화시킨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과 미국의 정권이 바뀔 때 대북정책이 크게 바뀌는 측면을 북한이 교묘하게 활용을 하면서 핵과 미사일 기술 개발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딜레마인데 이 딜레마를 푸는 첫 실마리는 한국이어야 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정권마다 바뀌어도 한국이 초정파적인 일관된 대북정책을 가지고 정권이 변화해도 일관성을 가지고 실천하면 그것이 일종의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서 미국 행정부가 따라오게 만드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게 안되니까 대북 정책이 표류하고 엇갈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도 미국이지만 한국이 가장 큰 문제다. 우리가 진보 정부 10년, 보수 정부 8년을 지났기 때문에 양쪽 정부의 대북정책의 문제점들이 어떻다는 것은 이미 감이 잡혔다. 양 진영의 대북정책을 철저하게 반성하면서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국제정치 상황과 21세기 시대정신에 걸맞은 제3의 대북 정책, 통일 정책을 끌어내야 한다.
-제3의 길은 뭔가?
=앞서 이야기했던 사람 중심이라고 하는 것이 첫 번째 핵심 개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의 사람들이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안이라면 시장원리에 입각해 경제 협력도 강화해야 하고 또 제대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달한다면 인도주의적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가장 시급한 의료 협력이나 환경 협력도 해야 한다고 본다. 사람을 내세우는 경우에는 좌냐 우냐는, 진보냐 보수냐는 이데올로기 대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제3의 접근법들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통하고 남쪽의 사람과 북쪽의 사람, 권력자들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 엮어지고 접촉면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통일을 향한 구심력은 강화된다고 본다. 구심력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심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반도 분단의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 국제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원심력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외교의 시대>라고 제목을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국제정치의 역사에서 1991년만큼이나 2008년이 중요한 시점이었다고 본다. 1991년은 잘 알다시피 소련이 저절로 붕괴되어서 냉전이 끝나고 미국 주도의 일극체제가 시작된 때인데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그 일극체제가 무너지고 일종의 다극체제로 진입하는 기점이 2008년이라고 본다. 2008년 경제 위기가 단순히 경제적인 사건이 아니고 정치적인 사건이 됐던 것은 그 사건을 기점으로 중국이 공세적인 외교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책 결정자들의 판단이 이제 도광양회 전략을 버리고 전면에 나서서 미국과 나란히 세계 강대국이 되어야 하고, 아시아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국가가 되어야 하겠다고 결정한 시점이 2008년이다.
그 시점 이후 한반도 주변 정세가 굉장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중간의 대결, 경쟁의 여파가 남중국해와 한반도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본이 ‘보통 국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과거 경제 대국이지만 군사안보 차원에서는 미국을 따라가던 ‘안보 소국’에서 이제는 경제력에 상응하는 안보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특히 아베 총리 이후 이런 군사적 수정주의에 더해서 역사 수정주의가 한일 관계를 얼어붙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북쪽에서는 김정은 시대로 진입했는데 김정은 리더십이 김정일 시대에 비해서 상당히 불안정 요소가 많다. 그래서 한반도 정세 및 남북한 관계가 과거보다 훨씬 더 불안해지는 시점이 오늘날이다. 이런 도전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고 그렇기 때문에 외교가 더욱더 중요한 상황이 됐다는 의미에서 제목을 정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정책을 평가하고 제언을 한다면?
=제언을 한다면, 외교적인 차원에서는 원심력을 약화시키는 외교, 주변국들로 하여금 한반도 통일이 오히려 더 자기네들 국익에 유리하다고 믿게끔 만드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 내부적으로는 남북한 간에 구심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현 정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내건 게 ‘통일대박론’인데 이것이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실현 가능한 논의가 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나 주변국 외교에서의 실질적인 노력이 함께 따라왔어야 했다. 앞으로의 외교의 행로를 원심력과 구심력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모색한다면 나름대로의 일관성을 갖춘 외교 전략이 될 거라고 본다.
또 하나 제언을 한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하겠다는 소극적 접근이 아니라 분명히 할 것은 분명히 해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한미 동맹의 타깃을 중국으로 삼아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를 구축하는데 한국을 끌어들이게 되면 중국의 지정학적 불안 요인을 더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그렇게 양쪽에 선을 긋고 그 선 안에서 일관된 방식으로 그때 그때 터져나오는 사건들을 다루면 우리의 외교적 공간이 더 확대가 되고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 통일정책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핵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은 미국이나 서방 세계와의 협력 하에 꾸준히 추구해야 하지만 동시에 남북한 간에 연결고리를 심화시키는 노력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후자가 없는 경우에는 통일 논의는 갈수록 멀어진다. 비핵화와 동시에 남북한 간 구심력을 강화해 통일을 추진해나가는 그런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
'좋은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태형 심리 연구소장: 시대정신을 가진 리더 (0) | 2016.05.08 |
---|---|
견명원 - 배철현 교수 (0) | 2016.03.28 |
샌더스가 질 수 밖에 없는 이유 - 슈퍼 대의원 (0) | 2016.02.16 |
누가 기득권 세력인가 (0) | 2016.02.05 |
시대정신을 묻는다- 장덕진 (1) | 2016.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