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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논문쓰기, 그들만의 학문
주간경향 입력 2016.05.25. 10:20
ㆍ한국 대학교수들 영문 저널에 주로 발표… 폐쇄적인 논문 유통구조도 문제
20년 전, 철학자 김영민은 그의 책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민음사)에서 한국 학계의 논문쓰기를 ‘기지촌의 지식인’에 비유해 비판한 바 있다. 복거일의 소설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의 한 단락을 도려내 풍자한 글이다. “기지촌의 지식인들은 총독부가 인정하는 학회에 논문을 발표해서 ‘식민증’을 받아야 따돌림을 받지 않고 행세할 수 있었다. 이 식민증이 없으면 결국 총독부의 연(緣)으로 형성되는 대학교수 자리는커녕 강사 자리 하나 얻기도 힘들었다. 총독부 산하의 학회에서 정한 규율을 어기는 교수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가 속한 학회나 학과는 망하는 판이었다…. 자연히, 총독부의 인정을 받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총독부의 기관지에 투고한 논문이 거푸 네 번이나 거절당해 몸도 마음도 지친 어느 지식인은 약을 먹고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학계의 논문쓰기는 여기에서 얼마나 벗어났을까.
북미 대학의 한 건물에서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어울려 있다 / 김정근 기자 |
‘육첩방은 남의 나라: 영어로 쓰여진 논문과 한국어로 살아가는 삶’. 지난 5월 20일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의 봄 학술대회가 열렸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위의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했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영어 중심의 논문쓰기가 한국 사회의 삶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을 짚었다. 논문은 학문의 언어다.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그러나 영어 중심의 논문쓰기는 커뮤니케이션의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김 교수의 말이다. “과연 논문을 누가 읽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다. 최근 출판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출판업계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한국어를 잘 쓰는 교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논문 편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한국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소통하는 능력은 퇴보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것을 우선시하고 국내 학자들 간의 피드백이나 대중과의 소통에는 가치를 덜 두는 학계 시스템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김 교수는 점점 늘어나는 영어논문이 “읽히지 않는 연구”로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배받는 지배자>(김종영·돌베개)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논문이 생산, 유통되는 과정을 ‘파편화된 인정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 “논문 출판은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이를 통해 대학에서 승진이 결정되고, 학문공동체에서 인정을 받고, 연구비 신청의 중요한 밑천이 마련된다. 연구자들의 논문 출판은 영문 저널(SCI급 저널)과 국내 저널(등재지 저널)로 나뉘는데, 이는 연구 출판의 글로벌 위계를 반영한다.” 연구자들은 영문 저널과 국내 저널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단연 유리한 것은 영문 저널이다. “특히 이공계열에서는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이 보편화되었으며 인문사회계열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SCI로 대표되는 ‘영어논문’은 학위 취득 후 교수직과 연구원직에게는 필요불가결한 문화자본이다.”
영문 저널이 높은 대우를 받는 것은 한국 대학사회의 미국 중심성에 있다. ‘대학교원의 박사학위 취득 대학과 임용 대학 간의 구조적 관계 분석’(이은혜, 2013)에 따르면 국내 상위권 대학은 외국 50위권 대학의 박사 출신(특히 미국 박사)을 임용했고, 국내 상위권 대학의 박사는 주로 국내 중·하위권 대학에 임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학들이 목을 매는 글로벌 순위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순위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 역량은 해외에서 인정을 받는 학술지에 얼마나 많은 논문을 게재했느냐에 의해 평가된다. 이는 외국 학위 소지자, 특히 미국 학위 소지자들이 교수 임용에 유리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2~2013년을 기준으로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인은 총 7만627명으로, 중국(23만5597명)과 인도(9만6754명)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한국 유학생 수는 중국(13억명)보다 7.8배, 인도(12억명)보다 17.5배나 많다.
물론 학문의 미국 중심성이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김승섭 교수는 국가별 학문의 미국 중심성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했다. 1981년부터 1999년까지 21개 과학분야에 논문을 출판한 학자 중 상위 1%의 학자(Institutue of Scientefic Information의 인용 숫자 기준) 1523명의 출신 국가와 현재 일하고 있는 국가를 분석한 자료다. 1523명 중 자신이 태어난 국가가 아닌 곳에서 일하고 있는 과학자는 총 486명이었는데, 이 중 75.8%인 358명은 미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중국과 대만은 90%가 넘는 학자가, 인도는 80%가 넘는 학자가 자신이 태어난 국가가 아닌 곳에서 연구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한국은 상위 1% 학자의 수가 적어 집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다. 프랑스와 일본은 상위 20% 미만만이 출신 국가가 아닌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김승섭 교수는 학문의 자생력 부분에서 프랑스와 일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학계가 미국 중심성으로 돌아가고 논문이 영어쓰기 일변도로 이루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구는 한국의 문제보다 해외의 트렌드에 초점이 맞춰질 경향성이 높다. 그 결과 앎이 삶의 터전과 괴리될 수밖에 없게 되고, 학문과 삶의 현장은 겉돌 수밖에 없다. <지배받는 지배자>에 따르면 한 학자가 ‘냄비 저널리즘’에 대해 영어로 논문을 쓰려고 했으나 이 개념을 미국 학자들에게 설득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연구자들은 한국적 맥락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을 미국 학술지에 싣는 데 버거움을 토로했다. “한국 얘기인데, 왜 미국 저널에 내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는 후문이다.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다분히 맥락 의존적이고 나라마다 중요성과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적 내용에 미국 학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영어로 논문쓰기가 확산될수록 한국 사회의 문제는 연구 주제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해외 학술지에 치우친 논문 생산이 필연적으로 앎과 삶의 격차를 넓히게 된다는 것이다.
유학상담 설명회를 찾은 사람들. / 김기남 기자 |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논문 유통구조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김승섭 교수는 “분야별로 논문을 왜 쓰는가는 조금씩 다를 것이다. 진리탐구에 해당하는 물리학 같은 순수과학이 있을 것이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응용과학이 있을 것이다. 응용 과학의 핵심은 소통이다. 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학자일 수도 있고 대중일 수도 있고 정책입안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논문이 쓰여진 다음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유통망 때문에 전달이 안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논문 유통은 민간업체에서 학회를 통해 논문을 구매해 이를 유료로 다운로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유통과정에서 연구자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실질적으로 없다. “논문을 썼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논문 저자들이 현재 저작권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받는 경우는 없다. 민간업체에서는 학회들과 계약이 돼 있다. 사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비난할 수 없지만 지식이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생각하고 공개접근(Open Access)의 형태로 논문이 유통되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논문 공유, 공공성 관점에서 접근해야
논문 유통구조에 대한 문제가 공개적으로 불거진 것은 지난 1월이었다. 2000여종의 학술지 및 196만편가량의 논문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내 최대 규모 학술데이터베이스 업체에서 구독료를 대폭 올렸다. 전년 대비 30~40% 인상을 요구했다. 이 업체는 매년 각 대학도서관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구독료를 받고 자료열람권을 제공해 왔다. 대학도서관들은 갑작스러운 인상액을 감당할 재정이 없었고, 많은 대학들이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일부 학술지만 선택적으로 구독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학원생을 비롯한 연구자들 상당수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이우창 문화연구가는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은 학교는 접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어서 대학원생들끼리는 농담조로 재정이 넉넉한 서울대에 친구가 있는 게 얼마나 편한지 이런 이야기도 한다. 전자자료는 영국과 미국이 잘 구비돼 있는데 거기에도 큰 규모의 학술 데이터베이스 업체가 있다. 이 업체들도 대학에 상당히 높은 구독료를 요구해 이에 대항해 공개접근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우창 연구가는 논문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논문 공유는 곧 연구자들 간의 대화라고 말했다. “지금 논문 데이터베이스 메커니즘이 교수나 연구자들이 논문을 생산하고 학회가 가져가고 이를 업체에서 사고 다시 대학에 파는 순환적 구조다. 논문은 연구자 집단 내에서 비싼 돈을 주고 팔려야 하는 게 아니라 작업을 할 때 참조하는 것이다. 연구자들끼리 논문을 공유하는 것은 대화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공공성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공개접근 형식의 과학 학술저널은 지난 10년 동안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공개접근 저널이란 구독료 수익을 기반으로 하여 논문을 심사하고 종이매체에 인쇄해 출판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학술저널과 달리 논문 저자들한테 투고료를 받아 논문 심사와 출판 비용을 충당하고 독자들에게 온란인에서 구독료 없이 논문을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하는 방식의 학술저널이다.
영어쓰기 중심의 논문 생산과 폐쇄적인 논문 유통은 그간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논문의 사회적인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했다. “옆을 보고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으며, 위를 보고 미소라도 한 번 더 짓는 것이 유리하고 따라서 현명한”(김영민) 한국 학계의 풍토에서 논문은 대화의 매개로 제기능을 다할 수 있을까.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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